무제 때, 공손용(公孫勇)과 호천(胡倩)이 무제의 사자를 사칭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공손용 등은 기병 수십 기를 대동하고는 도적을 잡는다는 핑계를 대며 진류의 전사(傳舍, 여행객이 머무르는 숙소)에 머물렀는데, 회양태수전광명은 이들의 행각을 알아차리고 바로 체포에 나섰다. 이때 어현(圉縣)의 수위(守尉)였던 위불해는 강덕 · 소창과 함께 이들을 모두 잡아들였고, 공적을 인정받아 당도후(當塗侯)에 봉해졌다.
후원 2년(기원전 87년),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6년 후 문제의 종묘의 기왓장이 바람에 날아간 책임을 물어 면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