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4년(4년), 대홍려 염천은 태복왕운, 대사도사직 진숭(陳崇), 수형도위이흡, 중랑장학당·사은(謝殷)·진봉(陳鳳), 기도위 녹병과 함께 부절·가절을 갖고 천하를 돌며 풍속을 관장하였다. 이때의 공로로 이듬해에 모두 열후에 봉해졌다.
거섭 2년(7년) 9월, 동군태수적의가 왕망 타도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조명(趙明)·곽홍(霍鴻) 또한 호응하여 스스로 장군을 칭하고 관청을 불태우며 노략질을 일삼으니, 조정에서는 대홍려 염천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하여 왕급·견한·왕안과 함께 조명을 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