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도위(水衡都尉)는 고대 중국의 관직으로, 전한 중기 ~ 신나라 때까지 존속하였다.
개요
무제 때인 원정 2년(기원전 115년)에 설치되었다. 관질은 2천 석이었으며, 황제가 소유한 정원인 상림원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화폐의 주조(오수전)를 관리하였다. 신나라 건국 후에는 여우(予虞)라고 하였으며, 후한 때에는 폐지되고 소부로 흡수되었다.
속관
속관은 다음과 같다.
- 상림(上林): 승 8명, 위 12명을 두었다.
- 균수(均輸): 승 4명을 두었다.
- 어수(御羞): 승 2명을 두었다.
- 금포(禁圃): 위 2명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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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탁(輯濯)
- 종관(鍾官): 오수전을 주조하였다.
- 기교(技巧): 오수전을 주조하였다.
- 육구(六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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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동(辯銅): 오수전을 주조하였다.
- 형관(刑官)
- 수사공(水司空)
- 도수(都水): 승 3명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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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창(農倉)
- 감천상림(甘泉上林): 승 4명을 두었다.
- 감천도수(甘泉都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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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 · 육구는 성제 때 각각 종관과 태복에 합병되어 폐지되었다.
출전
- 반고, 《한서》 권19상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