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강 원년(기원전 65년), 북지태수에서 태복으로 승진하였으나 4년 후 병으로 면직되었다.
장연수는 장안세로부터 부평후(富平侯) 작위를 이어받아 진류에 머무르고 있었고, 또 위군에 다른 식읍이 있었다. 장연수는 자신이 이렇다할 공도 없이 넓은 봉지를 가진 것을 죄스럽게 여겨 여러 차례 식읍을 깎아주기를 청원하였고, 선제는 이를 받아들여 봉지를 평원 소속으로 옮기는 한편 호구를 예전과 같이 하고 조세를 반으로 줄였다.
감로 3년(기원전 51년)에 죽으니 시호를 애(愛)라 하였고, 아들 장발이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