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군(陳郡), 회양군(淮陽郡)은 중국의 옛 군이다. 군국제 시행 시에 진국(陳國), 회양국(淮陽國)이 설치됐었다. 지금의 허난성저우커우시 일대이다.
진
진나라에서 통일 후 설치한 36군 중 하나로 추정되며, 기원전 224년 진나라가 진(陳)현과 평여(平輿)현을 점령하고 그 이듬해 초나라를 멸망시키고서 그 근방에 세웠다. 혹은 초군(楚郡)이라고도 한다. 《사기》에서 진수(陳守)라는 표현이 있으므로 한동안 진군으로 여겨졌으나, 회양노승(淮陽弩丞)이라고 써진 진나라 시대의 도장을 보면, 본디 이름은 회양군이고 진수는 진한대에 군의 치소가 있는 현으로 군을 대신하여 부르는 관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1]
전한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3월, 고제가 이성제후왕인 양왕 팽월을 제거하면서 회양국을 새로 만들고 서자 유우에게 봉했다. 이때 회양군 외에도 영천군이 회양국의 봉토로 내려졌다 하나 확실치 않다.[2][3] 혜제 원년(기원전 194년), 고황후가 유우를 조국으로 옮기면서 왕국이 폐지돼 회양국의 군들은 모두 한나라의 직할 군이 됐다.[4][5] 여후 원년(기원전 187년), 고황후가 회양회왕에게 회양국을 봉하면서 회양군은 다시 회양국이 됐고, 여후 8년(기원전 180년) 고황후가 죽고 여씨 정권이 몰락하면서 회양군이 됐다.[5] 문제 4년(기원전 176년), 문제가 회양국으로 되돌려 유무를 왕으로 봉했고, 유무를 양국으로 옮기면서 도로 군이 됐다.[6] 한편 이 무렵 여남군이 회양군에서 분립했다.[7] 경제 전2년(기원전 154년), 경제가 유여에게 봉토로 줘 왕국이 됐고, 전3년(기원전 153년) 유여를 노국으로 옮기면서 군이 됐다.[8] 원강 3년(기원전 69년), 선제가 회양헌왕에게 봉토로 준 뒤로는 전한 멸망 때까지 왕국으로 존속했다.
연주자사부에 속했다.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3만 5544호, 98만 1423명이 있었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 지리지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원연 · 수화 지간(기원전 8년)의 현황으로 여겨지며, 일반적으로 첫 현이 군의 치소이다.[9]
동진안제의희 연간에 화이안 시 일대에서 회양군이 신설되었고, 유유가 일시적으로 옛 회양국의 땅을 수복했을 땐 그 땅에 진군이 신설되었다. 회양군은 서주에, 진군은 예주에 속했으며 각각 4현 2,855호 15,363명, 4현 693호 4,113명을 거느렸다.[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