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MBC 연기대상 대상 1999 제1회 사회복지의 날 대통령표창 1999 엘리자베스 아덴 제1회 비저블 디퍼런스 어워드 1997 제31회 가수의 날 가수가 뽑은 최고연기자상 1992 MBC 방송대상 1989 한국방송대상 여자연기상 1988 MBC 방송대상 1988 동아연극상 연기상 1983 마닐라 국제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 1979 제1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2009 제3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여우주연상 2009 스타일아이콘어워즈 뷰티풀셰어링상 2009 제18회 금계백화영화제 해외부문 여우주연상 2009 제18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2009 제2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2009 제10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2009 제4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2008 KBS 연기대상 대상 2003 제14회 위암 장지연상 2003 제2회 스타 선행 대상 2003 제1회 페미니즘 대중문화 예술대상 2002 MBC 명예의 전당 2019
은관문화훈장 2019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2016 제16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인기영화인 원로배우 2015 KBS 연기대상 방송 3사 PD가 뽑은 연기자상 2011 제1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2011 제30회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 2011 제36회 로스앤젤레스 영화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 2010 월드비전 국제총제 특별상 2010 제4회 아시아필름어워드 여우주연상 2010 제7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여자배우상 2010 제1회 올해의 영화상 여우주연상 2009 제12회 디렉터스 컷 어워드 올해의연기자상
이화여자대학교 2학년 시절인 1963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며 연기자로 입문하였다.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최초로 붙은 배우다.
수많은 여배우들의 존경을 받고 대표적인 롤모델로 꼽히는 정통적인 연기파 배우로 '갓혜자'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며, '다시다 아줌마'라는 닉네임으로 유명세를 탔다.
MBC 《전원일기》(1988), 《사랑이 뭐길래》(1992), 《장미와 콩나물》(1999), KBS 《엄마가 뿔났다》(2009)로 총 네 번의 연기대상을 수상하였고, 총 네 번(제15회, 제25회, 제45회, 제55회)의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여 최다 백상 대상 수상자로 기록 되어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의 연기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극찬을 쏟아 해외에서 수 많은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으며 김혜자 연기의 진수를 볼 수있는 대표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유의 대사 처리와 뛰어난 캐릭터 분석력을 바탕으로 한 절제된 연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연기력에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는 최고의 배우이며, 끊임없이 연기 변신을 추구하는 작품 선정에도 아주 신중한 배우로도 정평이 나있다.[2]
1960년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했으며 다음 해 1961년 KBS 서울중앙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으나[3], 방송국 연수를 끝내기도 전에 11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연기 중단을 선언했고 대학 졸업을 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김혜자는 “열망만 컸지 연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 도망친 것”이라고 말했다.[2]
한 가정의 어머니로 살던 도중 27세의 나이에 다시 연기에 대한 갈망을 느꼈고, 이후 3년 간 연극 무대서 ‘연극계 신데렐라’로 활동했다. 1969년 문화방송, MBC가 개국하면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인 김혜자를 영입하였고, 그는 MBC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2]MBC 드라마 《개구리 남편》, 《강변살자》, 《수사반장》, 《학부인》, 《무지개》, 《신부일기》, 《여고동창생》, 《후회합니다》, 《당신》, 《안국동 아씨》 등의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알렸고 다수의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하면서 최고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1974년 MBC 제1회 탤런트 연기상에서 김혜자는 최불암과 나란히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1975년 출연한 《신부일기》로 제3회 대한민국 방송상 시상식에서 TV연기상과 제10회 방송윤리위원회상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 연기상을 수상했다. 이어 1977년 《당신》으로 1978년 제14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자상을, 이듬해 《행복을 팝니다》로 1979년 제1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스타의 반열에 오른 뒤 수많은 광고를 찍었는데, 그 중 1975년부터 2002년까지 CJ제일제당 전속 모델로 27년동안 활동한 이력으로 김혜자는 ‘국민 엄마’라는 이미지를 형성했다. 당시 제일제당의 대표 제품이였던 다시다 광고 속에서 외쳤던 “그래, 이 맛이야”는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4]
광고에서 다진 ‘국민 엄마’ 이미지를 바탕으로 1980년 인생작이자, 국내 최장기간 방영한 한국 대표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회장(최불암 분) 부인 이은심 역을 맡아 오랜 기간 출연하였다. 이 드라마는 1980년 10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2002년 12월 29일에 종영하였다. 이후에도 '아버지 역을 가장 잘하는 인기인', '어머니 역을 가장 잘하는 인기인’ 설문조사에서도 함께 1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MBC의 이미지를 형성해온 연예인으로 인정받았다.[5]
2008년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새로운 자유를 꿈꾸며 다소 특이한 어머니상을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파격적인 인상을 주며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KBS 연기대상 대상과 제4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였고, 이는 MBC 《행복을 팝니다》, 《모래성》, 《엄마가 뿔났다》로 총 3회에 걸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2]
이후에도 끊임없이 연기하며, 새로운 것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9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 도준(원빈 분)의 살인사건 누명을 벗기기 위해 범인을 찾아 나서며 동물적 모성을 연기했다. “아무도 믿지마. 엄마가 구해줄게”라는 이 한마디는 김혜자의 ‘국민 엄마’ 연기 인생에 또다른 한 획을 그었다. 영화는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생애 첫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7] 김혜자는 이 영화로 국내·외 무대서 총 아홉 번의 수상 기록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배우 최초 미국 할리우드 LA영화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8][9][10]
자선 활동
1991년 국제구호개발 NGO인 월드비전의 친선 대사로 임명되어 30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 하에 아프리카 난민을 위해 앞장섰다. 2015년에는 네팔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월드비전에 1억원을 기부했다.[11]
2004년에는 아프리카 봉사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을 저술하며 베스트 셀러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12] 인세 전액을 기부해 북한 용천 긴급구호와 어린이들을 위한 공부방(꽃때말공부방)을 세우는데 사용했다. 시에라리온에서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마담 킴스 프로젝트>를 후원했으며, 결연으로 전세계 가난한 어린이 103명을 돕고 있다.[13]
2004년 제과업체 CF 출연료 일부인 9,600만원을 월드비전에 기부했고, 2014년 12월 출연한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출연료 전액을 기부하였다.[14]
개인 생활
편의점 GS25에서 자신을 브랜드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2010년 10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식품 브랜드 '김혜자 도시락'을 런칭하였다.[15] 김혜자의 아들은 식품 업체 정성에프에스 대표인 임현식으로 '김혜자 도시락'은 아들이 만든 것이 아니지만 품질 관리에 개입하는 조건하에 계약을 했다고 한다.[16]
1974년, 1978년, 1988년, 1992년, 1999년 MBC 연기대상 대상 수상자로 MBC에서는 최다 대상 수상자이다.(참고로 지상파 3사를 통틀어 연기대상 최다 대상 수상자는 총 6회를 기록한 고두심이다.)
1979년, 1989년, 2009년, 2019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자로 최다 대상 수상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로 국내, 국외 영화제에서 무려 9번의 수상 기록을 세웠고, 한국 배우 최초로 헐리우드의 미국 영화비평가협회에서 수상을 하였다.
6.25전쟁 때 어린 시절, 가족이 전부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큰언니의 기지로 여러 번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하며 그 일화가 SBS 《토요미스테리 극장》에 나온 적이 있다.
대단히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재정경제부 장관 및 사회부 차관을 역임한 정치인인 김용택(1904년 ~ 1983년)이다. 아버지 김용택이 17살에 결혼하여 딸 2명을 낳은 뒤 22살에 미국으로 유학가서 15년 동안 미국에서 지내다가 귀국 후 김혜자를 얻었다. 이 때문에 김혜자는 언니들과 나이차가 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