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선천군 출생. 보성여학교 재학 시절인 17세 때부터 연극 활동으로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영화 데뷔는 1952년 신상옥의 감독 데뷔작 《악야》를 통해서였다. 이강천 감독의 1958년작 《생명》을 통해 주연급 스타 배우로 성장했다. 1962년 《다이알 112를 돌려라》에 출연하면서부터 이만희 감독의 히로인이자 페르소나로서 오랫동안 공동 작업을 함께 했다. 말년에도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에 출연하는 등 3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1]1953년가수로도 데뷔한 그는 가창에도 소질이 있어서 《생명》, 《꿈은 사라지고》, 《심야의 부르스》, 《그 이름을 잊으리》, 《예라이샹》 등에서 부른 주제가는 음반으로 발매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2000년 3월 지병인 간질환으로 숨졌다.
평가
"1960년대 가장 뛰어난 성격배우,"[2] "검은 눈동자의 우수,"[3] "도회적 이미지가 빛을 발했"던 배우[1] 등의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