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인이 현재의 크로아티아에 온 것은 7세기 초의 일이다. 이들은 크로아티아 공국(626년 ~ 925년경), 판노니아 공국(9세기)을 세웠다. 925년에는 트르피미로비치 왕조 출신의 토미슬라브 공작이 크로아티아의 국왕 칭호를 받았다.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은 200여년 가까이 주권을 지켰으며, 페타르 크레시미르 4세와 드미타르 즈보니미르 국왕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1000년경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이 아드리아해 연안을 통제하면서 크로아티아는 쇠퇴하게 된다. 1090년대 크로아티아에서는 왕위 계승자가 없었기 때문에 왕국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1102년 크로아티아는 헝가리 왕국과의 동군연합(크로아티아-헝가리 동군연합) 관계를 수립했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인 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수립되기도 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면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다. 1991년6월 25일에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해 주권 국가가 되었다.[7] 이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반발하여 전쟁을 일으켰으나 물러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스타샤'에 의한 학살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세르비아계는 이후 크로아티아인들이 보복할 것을 두려워 했고, 양측 사이에 충돌과 인권 침해가 뒤따랐다.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인들은 크로아티아의 독립에 반발하여 크라이나 세르비아 공화국을 세웠고, 이듬해 보스니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으로 독립하자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인들이 스릅스카 공화국을 세우겠다고 하여 보스니아 전쟁이 일어났다. 크로아티아는 크로아티아인 우세지역을 크로아티아에 통합할 목적으로 보스니아 전쟁에 참전하였고, 세르비아와 마찬가지로 보스니아 무슬림을 학살하였다. 보스니아 전쟁이 끝나갈 무렵 크라이나 세르비아 공화국에 대한 총공격을 실시해 괴멸상태에 빠뜨렸고, 1998년 완전히 통합했다.
판노니아 평원, 디나르알프스산맥이 크로아티아의 지형 가운데 대부분을 형성한다. 크로아티아 전체 국토의 53.42%는 해발 200m 이하의 저지대이다. 저지대의 대부분은 크로아티아의 북부 지방, 특히 슬라보니아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판노니아 평원의 일부를 형성한다. 평지에는 지질학적으로 지루, 지구가 모여 있는데 판노니아 해에 있던 섬들로 추정된다. 해발 고도가 비교적 높은 토양은 디나르알프스산맥의 리카, 고르스키코타르에 분포하고 있지만 고지대는 크로아티아 전체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디나르알프스산맥에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디나라산(높이 1,831m)을 비롯한 높이 1,5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위치한다. 크로아티아에 위치한 아드리아해의 해안선은 길이가 1,777.3km에 달한다. 1,246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섬들은 길이가 4,058km에 달하는 해안선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는 지중해에서 가장 복잡한 해안선이다. 카르스트 지형은 크로아티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디나르알프스산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해안과 도서 지방에도 카르스트 지형이 분포하고 있다.
크로아티아 전체 국토의 62%는 흑해로 흘러가는 하천의 유역이다. 크로아티아를 흐르는 큰 강으로는 도나우강, 사바강, 드라바강, 무어강, 쿠파강이 있다. 아드리아해 방향으로 흐르는 강 중에서 가장 큰 강으로는 네레트바강이 있다. 크로아티아의 기후는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띠고 있는데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는 대륙성 기후로 분류된다. 크로아티아의 연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를, 내륙 지방은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띤다.
크로아티아에는 유럽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생물 다양성생태지역을 갖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생물지리학적으로 지중해 지대, 디나르알프스산맥 지대, 드라바강-도나우강 지대, 대륙성 지대로 나뉜다. 크로아티아는 444개의 생태지역을 갖고 있으며 이는 크로아티아 전체 면적의 8.5%에 달한다. 크로아티아에는 37,000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생물까지 포함한다면 최소 50,000종, 최대 100,000종의 생물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달마티아 지역을 중심으로 아드리아해 연안에 관광 명소가 많아 대표적 외화가득원은 관광이었으나, 내전으로 관광수입이 격감하다가 괄목할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100여만명이 넘는 유럽인 휴양객들이 아드리아해 연안을 찾고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소기업들이 많은 실업자를 흡수했고, 제약회사 플리바는 크로아티아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런던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인플레이션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외환 보유고도 늘었다. 주요 지하자원은 원유와 천연가스로 이들 지하자원과 스플리트 수력발전소(22만kW)의 동력을 기초로 제강·정유·조선·철도차량·기계설비·정유·화학 등의 중화학공업이 발달해 있고 식품가공·제지·섬유·목재·전기·전자·의약품 공업 등의 경공업도 발달하고 있다. 토지이용에 있어서 농경지는 27.6%로 주로 옥수수·밀·보리 등 과수를 재배하고 있다. 산림은 전국토 35.6%로 젖소 등 목축을 한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독일·이탈리아·러시아 등이며 주요 수출품은 의류·자동차·수송기계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전기기계 등이다. 리예카와 스플리트는 이 나라 굴지의 무역항이고 자그레브로 연결되는 철도가 있다.[8]
경제적 이점으로는 안정된 경제성장, IMF보호하의 정부지출 축소, 구제 프로그램 시작을 들 수 있고, 약점으로는 2001년부터 시작한 노동조합의 설립과 저항, 전쟁으로 인한 피해 약 500억 달러, 높은 실업률(20%)을 꼽을 수 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크로아티아인 용병들이 착용하던 츠라바트(Cravat)는 넥타이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아드리아해와 접한 두브로브니크 구 시가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그리고 2018년 FIFA 월드컵에서 결승전에 올라서 아쉽게 프랑스에게 4대 2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이는 크로아티아의 최고 기록으로 기록되었다.
대외 관계
대 한국 관계
대한민국과 수교국이다. 한인들이 소수 민족의 일부로 거주하고는 있지만 한국과 크로아티아 간의 직항 항공편은 없다. 국내항공사 중 대한항공이 인천발 자그레브행 전세편을 운항하고 있다. 주로 한국 관광객들이 두브로니크를 많이 방문하는 편이다.
대 세르비아 관계
1920년에 세르비아를 포함하여 건국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나치에 협력한 크로아티아인에 의해 세르비아인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졌다.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서로 민간인 학살과 인권 유린을 자행하여 서로 사이가 우호적이지는 않다.
대 헝가리 관계
1102년에 크로아티아는 슬로베니아, 달마티아와 함께 헝가리의 왕을 자신들의 군주로 받아들였다.[6]:200헝가리는 1683년부터 1791년까지 크로아티아를 재장악하며 합스부르크 제국 내 슬라브족을 영접하기 위한 항구를 경계지역에 건립하였다.[6]:201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같이 복속된 경험이 있으며,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붕괴 이후 두 나라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참고로 두 나라 모두 나토 회원국이다.
대 러시아 관계
러시아와는 소련 해체 이후에 수교를 맺었고 약간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서방과의 관계가 러시아와의 관계보다는 강하다.
대 유럽연합 관계
슬로베니아 이후 처음으로 유럽연합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2023년서부터는 크로아티아도 유로화를 정식으로 도입하였다.
유럽연합 가입
크로아티아는 국민투표에서 66.3% 찬성으로 유럽 연합의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었다.[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