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국(몽골어: Монгол Улс, ᠮᠣᠩᠭᠣᠯ ᠤᠯᠤᠰ 멍걸 올스듣기 (도움말·정보), 음차: 몽고(蒙古)), 약칭 몽골은 동아시아의 내륙국이다.[5] 영토는 1,564,116km2의 면적이며, 인구는 2024년 기준 약 350만 명이다. 북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 접하여 있다. 최대도시 겸 수도는 울란바토르이다.
명칭
몽골의 정식 명칭은 몽골 올스(Монгол Улс) 즉, 몽골국이다. "몽골 올스"에서 "몽골"(Монгол)은 "용감한"이라는 뜻을 가진 부족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민족 이름을 뜻하고 "올스"(Улс)는 몽골어로 "나라" 또는 "국가"를 의미한다. 직역하면 "몽골 민족의 나라"라는 뜻이 된다.
중국을 비롯한 한자 문화권에서는 몽골을 몽고(蒙古)라고 부르는 경우도 꽤 있었다. 몽골 제국원나라의 승상 메르키트 토크토아가 편찬을 주도한 요사에는 1차례, 금사에는 36차례, 송사에는 6차례 몽고(蒙古)의 용례가 확인된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한국에서도 1980년대까지 주로 몽고라고 불렀다. 그러나 1990년에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한 몽골 정부가 '몽고'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몽골족에게 시달려왔던 중국인들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조합하여 몽골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단어라며 한국어 국명을 변경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6][7]
이에 국립국어원은 1991년 9월 11일에 열린 제1차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를 통해 "'몽고'와 '몽골'이라는 단어를 함께 쓰되 장차 '몽골'로 통일한다."고 결정했다.[8][9] 덕분인지 2020년대 기준 한국에선 몽고보단 몽골이 더 많이 쓰이고 주류화된 상황이다.
간략한 역사는 중세 들어 칭기즈 칸이 몽골 제국을 건국했으며, 몽골 제국의 제5대 칸인 쿠빌라이 칸 시절에는 국호를 원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명의 공격을 받고 몽골 지역으로 이동하여 국호를 북원으로 하였다. 청에 복속된 1688년부터는 '외몽골'로 불렸다. 청이 멸망하는 1911년 제1차 혁명을 일으켜 독립했으나 1920년 철폐되었고,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영향을 받아 1921년 제2차 혁명을 일으켜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을 설립하였다. 그렇게 1991년까지 공산주의 체제였다 민주화되어 1992년부터 현재의 민주공화정 체제인 몽골국이 되었다.
고대 몽골 지역은 흉노, 돌궐 등이 지배하였다. 흉노의 정체에 대해선 오늘날까지도 학자들간에 여러 이견과 논쟁들이 있지만, 여하튼 돌궐 같은 튀르크인 정복자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몽골로 건너가 동쪽의 몽골인을 정복한 적도 있어 몽골에서는 흉노와 돌궐도 몽골의 일부 역사로 배운다고 한다. 몽골족의 직계 조상은 몽골 동부 지역에 존재한 동호족 계통인 더더우위, 몽올실위이며 약소국이였던 고대 몽골인들은 사서의 문헌적 기록에서도 몽올실위, 더더우위로서 가끔 기록이 보일 뿐이다. 당시엔 몽골의 직계 조상인 몽올실위와 더더우위가 고구려와 돌궐에 조공을 보낸 적도 있었다. 고구려가 만주 지역을 정복하면서 일부 몽골 계통 민족들은 고구려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계통이 불분명한 거란 또한 고구려에 복속된 적이 있었다.
몽골족이 세계사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는 시점은 13세기 몽골 제국 시기부터다. 위구르 카간국이 키르기스에 의해 멸망하면서 몽올실위는 독립하였다. 1206년보르지긴 테무친이 몽골 지역을 통일하고 쿠릴타이에서 칭기즈 칸으로 즉위하면서 국명을 몽골 제국이라고 하였고, 이후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대원, 킵차크 칸국 등의 여러 나라들로 분열되면서 14세기 말 몽골인 제국은 북원 빼고는 전부 현지 세력에 의해 멸망하였고, 17세기 몽골 세력을 복속시킨 청나라는 몽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시켰다.
1924년11월 26일에는 정부 형태를 군주제에서 인민 공화제로 고쳐 국호를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정하고, 세계에서 2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 후 소련의 몽골과 중국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되었으며, 몽골은 중소 국경 분쟁 발생시 소련을 지원하였다.[10] 1991년 말에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으며, 1992년2월 13일에 복수 정당제를 원칙으로 하는 헌법을 채택하였다. 또한 계획 경제 체제를 폐기하고 사회적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하였다.
자연 환경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에 속한다. 국토는 4가지 성격의 지대로 나뉜다. 서쪽은 알타이, 항가이라고 하는 큰 산맥, 남쪽은 바위와 모래가 전부인 고비 사막, 동쪽은 아무것도 없는 초원, 그리고 북쪽은 후브스굴호와 사람이 뚫고 지나가기 불가능한 시베리아의 남쪽 산림(타이가)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고도는 평균 1,500m 정도다.
기후
고비사막의 영향을 받아 매우 건조(건조기후)하다. 일년 평균 강수량이 388mm 정도다. 고비사막에서 발생하는 황사는 중국, 한국의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몽골어가 공용어다. 러시아어는 공산주의 시절에 제2국어 수준으로 널리 가르쳤던 언어였다. 소련 해체 이후에 러시아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줄었지만, 2007년에 블라디미르 푸틴이 몽골을 방문한 이후, 다시 중요한 언어로 각광받고 있다. 서쪽에는 소수의 카자흐족들이 카자흐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과의 활발한 외교관계의 영향으로 한국어, 일본어를 배우는 몽골인들도 존재해 있으나, 지리적으로는 중국과 가까우므로 중국어도 필수 과목으로서 가르치기도 했다.
몽골어는 알타이제어의 하나로 넓은 뜻으로는 몽골민족이 과거에 사용했고 또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몽골계 언어 전반을 가리킨다. 좁은 뜻으로는 위구르계 몽골문자로 쓰인 몽골어 문어를 뜻한다.
사용지역은 몽골을 중심으로 중국 변경지구, 아프가니스탄, 볼가강(江) 유역 등 광대한 지역에 미친다.
현대 몽골어는 동서의 대방언군(大方言群)으로 나뉘고 그 밖에 약간 고립된 방언이 있으나, 지역적 언어차는 별로 심하지 않다. 그러나 2, 3개의 고립된 방언은 어형(語形) 변화가 심하여 다른 방언과의 차이가 크다.
몽골어를 대표하는 방언은 동(東)몽골방언군에 속하는 할하어 계(系)의 언어로 현재 몽골 전지역의 공통어 구실을 한다. 할하는 옛부터 몽골제국, 원나라의 지배 계층이였다. 차하르는 몽골 제국이 남하하여 중국을 정복할 때 내몽골에 살던 몽골계 부족으로 하층 계급이다. 그래서 몽골어를 대표하는 방언은 할하어이며, 차하르어는 거의 잘 사용하지 않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몽골어는 13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중세 몽골어 시대, 17세기부터 현대까지의 근대 몽골어 시대 등 두 시기로 나뉜다.
몽골인의 주된 종교는 티베트 불교로 역사적으로는 티베트와의 관계가 깊다. 하지만 1992년 선거로 민주화된 이후 개신교가 선교사들에 의해 유입되고 있으며, 그 이전부터 러시아의 영향으로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이 소수 있다. 신앙자 분포(비율)는 불교 53%, 이슬람교 3%, 토속종교 3%, 기독교 2%, 무종교 39%이다.
스포츠
몽골의 전통 무술 브흐는 몽골의 국기(國技)로 정착되어 있다. 체구가 건장한 청년들은 일본에 가서 스모 선수로 등단하기도 한다.
몽골 횡단 철도(The Trans-Mongolian Railway)가 시베리아의 울란우데(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연결)에서 울란바토르를 거쳐 중국의 얼롄하오터 시를 잇고 있다. 얼롄하오터에서는 선로가 바뀌며 베이징까지 잇는다. 이 철도의 몽골 내 노선은 1,110 km다.[12] 그 지선 하나는 다르항에서 구리 광산이 있는 에르데네트까지 잇고, 또 다른 지선 하나는 울란바토르에서 구리 광산이 있는 바가누르(몽골어: Багануур)를 잇는다. 그 외에 처이발상 철도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접속되어 있다. 몽골정부는 이 두 철도를 연결하는 노선을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13] 또한 초이발산과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노선도 추진되고 있다.[14] 몽골 철도의 총 길이는 1,810 km이고, 철도 밀도는 11.5 km/10,000 km2로, 이웃한 중국에 비하여 0.12배에 불과하다. 자동차 도로는 잘 발달되어 국내 항공로와 마찬가지로 각 주에 통해 있다. 국내 항공로는 중국,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다.[15] 몽골의 차량은 약 21만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