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춘천 출신으로 본관은 양천이다. 종교는 불교, 신장은 188cm, 체중은 80kg이다.
프로 농구 선수 당시 포지션은 슈팅 가드였다. 실업 농구 기아자동차 팀에서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 등의 중앙대학교 동문들과 함께 일명 '기아 왕조'를 구축하며 승승장구하며, 농구대잔치 7회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MVP도 3회 수상하였다. 215경기에 출장하여 총 5352점을 기록, 11시즌 통산 경기당 평균 득점 24.89점을 기록하였다.
한국프로농구에서는 1998년 정인교를 상대로 트레이드된 이후 TG 삼보 엑써스 (당시 원주 나래 블루버드, 現 원주 DB 프로미)에서 활약했다. KBL 8시즌 동안 통산 4524 득점, 1148 리바운드, 1572 어시스트, 508 스틸을 기록했다. 등번호 9번은 영구 결번 처리되었다.
농구 천재, 농구 9단, 농구 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탁월한 기량에 카리스마를 갖춘 그는 화려한 플레이로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누렸다. 1982년 용산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청소년대표로 선발된 이후 1999년까지 17년 동안 청소년대표를 거쳐 국가대표로 활약하였으나 아시안 게임과 아시아 선수권 대회의 우승 경력은 없다. 1995년에는 ABC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내는 이미수이고, 아들인 허웅과 허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현재 농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일화
1990년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이집트전에서 62점을 기록하며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 사상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수립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2][3][4]
1990년 농구대잔치 챔피언결정전 2차전 도중 현대전자 소속이었던 임달식에게 얼굴을 강타된 후 이에 격분하여 달려들다가 같은 현대전자의 김성욱 선수에게 얼굴을 맞았고 이 사건으로 6개월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졌으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자격 정지가 해제되었다.[5]
1996년 여름 무면허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되어 구속 기소[출처 필요]되었으며 이후 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년 징계가 풀렸는데도 경기에서는 벤치를 지켜야 했다. 이 때문에 팀은 원년 챔프를 차지했지만 최우수선수는 강동희가 차지했다. 이 때부터 시작된 최인선 감독과 갈등[6]으로 그가 후에 원주 나래 블루버드 (현 원주 동부 프로미)로 이적하는 빌미가 되었다.[7]
허재의 두 아들 허웅과 허훈 역시 농구선수이다. 2007년 제36회 전국소년체전에서는 당시 둘이 뛰고 있던 용산중학교와 삼광초등학교가 각각 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8]
2009년 10월 16일 부산 해운대의 어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었다.
허재가 속한 1997년 실업농구의 기아자동차 멤버들, 즉 허재를 포함해 강동희, 김유택, 이훈재, 한기범, 조동기, 김영만 등이 그대로 이어져 온 프로 구단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프로 원년 챔피언 결정전까지 무난히 진출하여 돌풍을 일으켰던 나래를 상대로 우승하게 된다.
2011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열린 한 국제대회에서 중국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뭔 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XX 진짜 짜증나게'라고 사이다 발언을 하였다.
2013년 10월 15일 울산 모비스와 경기에서 심판판정에 항의할 당시 블락을 '불낙'으로 발음하게 되면서 이와 관련된 패러디가 나오게 되었다.[9]
허재는 KCC의 감독으로서, 아들인 허웅과 같은 팀에서 함께 뛰는 것은 불편하다는 이유로 2014-15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허웅 대신 김지후를 선택하였다.
↑박세운 <노컷뉴스> 허재는 되고 추일승은 안된다? 2013.11.21....지난 10월15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주 KCC와 울산 모비스의 경기를 돌이켜보자..(중략)...3점슛을 시도할 때의 슛 동작 반칙 상황. 양팀 모두에게 비슷한 장면이 있었는데 KCC 선수는 파울이 선언된 반면 모비스 선수에게는 파울이 불리지 않았다. 허재 감독은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심판을 강하게 몰아부쳤다. ("이게 블락이야?"라고 외치는 허재 감독의 항의 장면을 '불낙전골(불고기+낙지)' 광고와 묶은 유머 동영상이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