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출생으로 만수북초등학교, 만수중학교, 부평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지칠 줄 모르는 측면 돌파로 인하여 '총알안탄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클럽 경력
2000년 K리그의 안양 LG 치타스(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무난한 활약을 보이며 2000년 K리그 우승과 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4년 당시 신생팀인 인천 유나이티드에 창단 멤버로 이적하였고,[1]인천광역시 출생인데다 올림픽 대표에 선발될 정도의 실력으로 인하여 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려고 하였다. 하지만 2005년 J리그의 시미즈 에스펄스에서 1억 5천만 엔 (약 15억원)이라는 거금을 제의하자 결국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하였고,[2] 그 해 천황배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6년 K리그의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여,[3] 2007년 K리그 우승, 2007년 FA컵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년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여,[4] 키플레이어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2009년 K리그 시즌에는 에닝요, 루이스, 이동국과 함께 '판타스틱4'라는 칭호를 얻으며 전북 현대 모터스의 첫 우승에 기여 했다.
2010 시즌 중 FC서울로 이적하여 2010년 K리그, 2012년 K리그 우승에 기여하였다.
2014 시즌을 앞두고 김동석과 트레이드를 통해 울산 현대로 이적하였으나,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인해 2014년 5월 15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2002년 FIFA 월드컵에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실제로 뛴 경기는 튀르키예와의 3위 결정전 후반전에서의 교체투입으로 약 15분간 활약하였고, 특유의 빠른발로 튀르키예 수비진을 공략했다.
2002년 8월 남북통일축구경기에서 뛰기도 하였고, 한동안 국가대표와 연을 잇지 못하다가, 2005년 동아시아 축구대회에서 활약하였으며, 2006년 FIFA 월드컵 최종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이후 다시 뽑히지 못하다가 2008년 9월 약 3년여 만에 대표팀에 복귀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로 상대 사이드를 파고들어 날카로운 크로스를 날리는 빠른 공수 플레이를 보여준다.
논란
2012년 자신의 SNS에 승부조작을 한 최성국에 대해 "최성국 파이팅이다. 한번이라도 죄를 짓지 않았거나 거짓말 하지 않았다면 성국이를 비판해도 좋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며 한 아내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인 성국이를 비판하지 말자.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다. 나도 그 상황이었다면 실수 하지 않았다고 장담 못한다"고 글을 남기며 논란이 일었고, 승부조작과 승부조작범인 최성국을 옹호하는게 아니냐며 많은 축구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있다. [출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