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상고 1학년 재학 시절 선배 백인호, 동료 포수 장호익과 함께 팀을 대통령배 우승으로 이끌며 크게 주목받았다.
군산상고 2학년 시절 팀을 고교 야구 3관왕에 이끌며 아마추어 시절 전성기를 구가했다.
잠실야구장 개장과 함께 부산고, 경북고, 천안북일고와 함께 군산상고를 이끌고 초청받아 호투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 시절 1, 2학년때부터 혹사당하면서 부상으로 인해 고교 3학년 때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이후 강속구 투수 대열에서는
멀어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팔색조라는 별명에 걸맞은 다양한 구종을 장착한 투수가 되는 계기가 됐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시절에는 투수 겸 강타자로 활약, 연고전에서는 홈런을 기록했는데 한때 원광대동국대 진학설이[1] 있었다.
국제 대회에서는 강호 쿠바를 상대로 완투했지만 패배했다.
군산상고 시절부터 단짝으로 활동한 포수 장호익은 프로에 와서도 그의 전담 포수로 활동했다.
유독 LG 트윈스를 상대로 좋은 피칭을 보였다.[2][3]LG 트윈스를 상대로 9회초 2사까지 노히트노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한때 팀 선배 선동열과 최다 완봉승 경쟁을 벌였다.
1993년(17승)과[4]1994년(18승) 최다 선발승을 기록했음에도 다른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해 2년 연속 정규 시즌 MVP에서 밀려났다. 다승왕 2회, 방어율 1회를 기록했다. 1996년 초 하와이 항명 사건의 주동자로 찍혀[5] 다음 해인 1997년 말 삼성 라이온즈로 현금 트레이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