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데뷔한 디 마리아는 2007년에 포르투갈의 벤피카로 이적해 유럽 무대에 발을 들였고, 3년 뒤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25M에 입단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후,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잉글랜드 역대 최고 이적료인 £59.7M의 기록을 냈지만,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던 루이 판 할이 디 마리아를 잘못 사용한 탓에 제대로 된 활약도 없이 1년 뒤에 £44M에 파리 생제르맹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 일로 인해 디 마리아는 루이 판 할과 척을 지게 되었다.
디 마리아는 1988년 2월 14일,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미겔과 디아나 사이의 세 아이 중 한 명으로 출생해 페르드리엘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유아기일 때, 그는 주로 활동적이었고, 의사의 추천에 따라 3세의 나이에 축구단에 입단했다. 그는 바네사와 에벨린 두 여동생과 인근 석탄 탄광에서 근무하는 부모를 도왔다. 그의 가족은 형편이 어려웠기에, 축구화를 사고 디 마리아가 취미 활동을 계속하기에는 부모에게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웠다. 디 마리아는 스스로를 "가족적인 인물"로 자칭하는데, 그는 급여의 큰 분량을 가족의 "형편을 일으키는데" 썼다고 말했다.[2]벤피카로 이적한 후, 그는 부모님과 여동생들의 집을 장만하고 부친에게 더 이상 힘들게 일하지 마시라고 부탁했다.[3]
클럽 경력
로사리오 센트랄
디 마리아는 4세의 나이에 로사리오 센트랄에 합류했다. 그는 인근의 토리토에서 축구를 했었고, 보상으로 35개의 축구공을 받았었다.[2]
디 마리아는 2005년 12월 14일, 2-2로 비긴 인데펜디엔테와의 아페르투라 원정 경기에서 에밀리아노 베치오와 교체로 출전해 첫 경기를 치렀다.[4] 2006년 11월 24일, 그는 4-2로 이긴 킬메스와의 다음 시즌 아페르투라 안방 경기에서 레오나르도 보르사니와 후반 시작 시점에 교체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골을 넣었다.[5] 캐나다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한 후, 보카 주니어스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6.5M을 준비했다.[6] 그는 잉글랜드의 아스널과 접촉하기도 했지만, 영국의 비 유럽 연합국 출신자에 적용되는 엄격한 노동 허가 조건에 따라 무산되었다.[7]
벤피카
2007년 7월, 디 마리아는 포르투갈의 벤피카로 이적해 측면을 맡게 되었다. 벤피카는 €6M을 로사리오 센트랄에 지불해 80%의 지분을 인수했고, 여기에 안드레스 디아스의 지분 50%을 얹었다.[8] 이후 2008년 8월, 포르투갈 구단은 남은 20%의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2M을 더 지불했지만,[9] 10%의 지분을 다시 게스티푸트에 매각했다.[10] 디 마리아는 그 해 여름에 앞서 벤피카를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떠난 주장 시망을 대체하기 위해 영입되었다.[6]
2009년 10월, 디 마리아는 벤피카와의 계약을 3년 연장해 2015년 6월 30일까지 유효하게 되었고, 인수조항으로 €40M이 붙었다.[11] 그 달 말, 디에고 마라도나는 그가 "아르헨티나의 차기 거물"이 될 것이라 언급했다.[12]
2010년 2월 27일, 디 마리아는 4-0으로 깔끔하게 이긴 레이숑이스전에서 처음으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 다음 날, 포르투갈 언론은 그를 언급한 기사에 "마법의 3마리아" (Magic Tri María) 라는 기사제목을 달았다.[13]
레알 마드리드
2010–11 시즌
2010년 6월 28일, 레알 마드리드는 벤피카와의 협상으로 디 마리아 이적에 합의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그는 €25M에 5년 계약을 맺었고, 포르투갈의 주식 시장을 규제하는 단체에 따르면 €11M의 장려금이 붙을 것이라고도 발표되었다.[14] 2010년 7월 7일, 디 마리아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마드리드로 직항했고,[15] 7월 8일에 의료 검진을 통과했다.[16]
그의 첫 경기는 2010년 8월 4일, 클루브 아메리카와의 경기로, 레알 마드리드가 3-2로 이겼다.[17] 8월 22일, 디 마리아는 3-1로 이긴 에르쿨레스와의 다른 원정 친선전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18] 8월 24일, 페냐롤과 마지막 친선전인 트로페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를 치렀는데, 자신이 "마법 같은 순간"이라 회자할 만한 활약을 펼치며 선제골을 넣고, 2-0 승리에 일조했다.[19]
그의 첫 리그 경기는 0-0으로 비긴 8월 29일자 마요르카전이었다.[20] 9월 18일, 디 마리아는 2-1로 이긴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 자신의 레알 마드리드 첫 리그 골을 기록했다.[21] 열흘 후에는 오세르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호골을 기록해 1-0 승리에 일조했다.[22] 12월 19일, 그는 세비야를 상대로 논란의 선제골을 기록했다. 며칠 후, 디 마리아는 카림 벤제마의 두 골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골을 도와 레반테와의 12월 22일자 경기에서 8-0 대승을 거둘 수 있게 힘을 보탰다. 리옹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그는 3번째 골을 기록해 3-0 승리를 도왔고, 레알 마드리드가 7년 만에 처음으로 8강에 오를 수 있게 도왔다.[23]
2011년 4월 5일, 디 마리아는 토트넘 홋스퍼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마드리드의 3번째 골을 기록했다.[24] 4월 20일, 그는 숙적 바르셀로나와 벌인 코파 델 레이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추가 시간에 퇴장당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가 크로스를 받아 머리로 1-0 결승골 (연장전 13분에 터진 골) 을 터뜨려 승리할 수 있었고, 그로써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첫 우승을 거두었다.[25]
2011–12 시즌
2011-12 시즌 초, 디 마리아는 여러 차례의 어려운 경기를 견뎌냈는데, 여름 휴식기 이후 그는 리그의 속도에 적응하는데 애로를 겪었다. 그 결과, 디 마리아의 시즌 초 활약은 진심으로 훌륭한 적도 있지만, 종종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보인 그저 미친 순간도 보이기도 했다. 이 순간은 레알 마드리드가 레반테에게 0-1로 패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이 경기에서 디 마리아는 경기 내내 레반테의 후안프란에게 온갖 끔찍한 반칙을 저지르곤 했다. 디 마리아는 양쪽 선수단이 경기장에서 패싸움을 벌이게 했다. 그러나, 디 마리아의 활약상은 그 후로 나아졌는데, 도움 순위에서 선두를 차지해 격차를 벌렸다. 2011년 10월을 기점으로, 주제 모리뉴 감독이 카카와 메수트 외질 대신에 기량이 상승하는 디 마리아를 기용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11월 27일, 디 마리아는 시내 숙적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리그 경기에 60분 출전해 레알 마드리드의 골을 기록했다. 모리뉴의 선수단은 경기를 4-1로 이겼다. 2011년 12월 3일, 디 마리아는 스포르팅 히혼과의 라 리가 경기에서 집어넣기 어려운 각도로부터 득점을 기록해 3-0 승리에 일조했다.[26] 그는 꾸준이 위협적인 존재로 레알 마드리드가 32번째 리그 우승을 거두는 과정에 정기적으로 주전 11명 중 한 명의 자리를 차지했는데, 마드리드는 아틀레틱 빌바오에 3-0 완승을 거두면서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27]
비록 디 마리아는 최고의 시즌을 보내지 못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었는데, 특히 2월 13일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크로스를 올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골을 도왔고,[29] 리그에서는 질 좋은 도움을 올렸으며, 시즌 동안 46경기에 나서서 8골을 기록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말라가와의 경기에서는 인상적인 득점을 기록했다.
2012년 8월 9일, 디 마리아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계약 기간을 연장해 2018년까지 구단에 남게 되었다.[30]
2013–14 시즌
2013년 10월 2일, 디 마리아는 쾨벤하운과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해 레알 마드리드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4-0 완승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31] 디 마리아는 카를로 안첼로티 신임 감독에 의해 중원에 배치되었다.
시즌 말이 되면서, 안첼로티 감독의 지시 하에, 디 마리아의 임무는 중앙의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대게 루카 모드리치와 샤비 알론소와 조합되었다. 그는 2014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해 2-1 승리에 공헌했다.[32] 디 마리아는 그 시즌 라 리가에서 최다 도움을 기록했는데, 총 17번 공헌했다.[33]
2014년 5월 24일, 2014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디 마리아는 세 명의 선수를 제치고 들어갔지만 티보 쿠르투아 골키퍼에게 막혔다. 110분에 디 마리아의 동료 가레스 베일은 그 위치에서 튀어나온 공을 머리로 넣으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2-1로 뒤집었고, 결국 4-1 역전승으로 끝냈다. 디 마리아는 경기 후 UEFA에 의해 최우수 선수로 꼽혔고, 상은 알렉스 퍼거슨으로부터 받았다.[34]
2014–15 시즌
디 마리아는 8월 12일 세비야와의 UEFA 슈퍼컵 2014 경기에서 승리할 때 레알 마드리드의 후보 선수로 대기했다.[35] 한 주 후인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차전에서, 그는 루카 모드리치와 교체되어 들어가 막판 15분을 뛰었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안방에서 1-1로 비겼다.[36]
디 마리아는 8월 30일, 0-0으로 비긴 번리와의 경기에서 안데르송과 70분에 교체로 들어가 신고식을 치렀다.[42] 디 마리아의 첫 올드 트래퍼드 경기는 퀸스 파크 레인저스와의 9월 14일자 경기로, 그는 프리킥으로 직접 골망을 갈라 첫 골을 넣고, 4-0 승리에 공헌했다.[43][44] 같은 경기에서, 그는 후안 마타의 골도 도와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43] 그의 활약은 스카이 스포츠의 선수 카메라를 통해 나타났는데, 이 경기를 위해 전용적으로 설치되어 있었다.[45] 2014년 9월 21일, 디 마리아는 레스터 시티와의 다음 경기에서도 득점과 도움을 기록했지만, 유나이티드는 경기를 3-5로 졌다.[46]
2014년 10월 2일, 디 마리아는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치른 처음 4경기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해 9월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 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47] 한 주 후, 그는 유나이티드에서의 두 번째 개인상을 받았는데, 그는 레스터와의 경기에서 카스페르 슈마이켈을 넘기는 골을 기록한 것으로 9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 달의 골 득점자로도 선정되었다.[48] 디 마리아는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 2014년 10월 5일 에버턴 전에서 골을 넣고 라다멜 팔카오의 골을 도와 2-1 승리에 일조했다.[49] 11월 29일 3-0으로 이긴 헐 시티전에서 디 마리아는 힘줄 부상으로 13분만에 교체로 나갔고, 이후 7경기에서 단 한 번만 교체로 출장하는데 그쳤다.
2015년 1월 4일, 디 마리아는 부상에서 복귀해 2-0으로 이긴 요빌 타운과의 FA컵 3라운드 경기에서 막판 골을 넣어 2-0 승리를 도왔다.[50] 한 주 후, 그는 0-1로 패한 사우샘프턴전에서 루이 판 할 감독에 의해 공격수로 기용되었다.[51] 디 마리아는 부진한 와중에 새로운 임무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10월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왔다.[52] 3월 9일, 디 마리아는 아스널과 펼친 FA컵 6라운드에서 웨인 루니의 동점골을 띄워주기도 했지만 넘어진 것처럼 연기하다가 경고를 받은 후 마이클 올리버의 상의를 잡아 퇴장당했고, 경기는 1-2 패배로 끝났다.[53][54]
시즌 후, 디 마리아는 평론가들과 기자들에 의해 시즌 최악의 영입 대상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55]
파리 생제르맹
2015–16 시즌
2015년 7월 25일, 디 마리아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아 계획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즌 전 훈련에 참가하지 않았고, 루이 판 할 감독은 "몰랐고 왜"라고 말하기에 이르었다.[56] 8월 2일, 디 마리아는 파리 생제르맹 이적을 앞두고 의료 검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고,[57] 나흘 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디 마리아를 프랑스 정상의 구단에 비공개 이적료로 매각했다고 밝혔으며, 4년 계약을 체결할 때 £44M이 책정된 것으로 추정되었다.[58][59][60]
2016년 10월 19일, 바젤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16-17 조별 리그 안방 경기에서, 디 마리아는 40분에 선제골로 시즌 첫 골을 기록했고, 파리 생제르맹의 3-0 승리를 공헌했다.[66] 11월 19일, 그는 2-0으로 이긴 낭트와의 안방 경기에서 리그 1의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67]
앙헬 디 마리아는 리오넬 메시의 영원한 국가대표 동반자이다.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으며 이들은 현재까지 계속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고정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매우 오랜 기간 동안 메시와 국가대표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사이이므로 친분이 대단히 깊다.
청소년 국가대표팀
2007년, 디 마리아는 아르헨티나 U-20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그는 파라과이에서 열린 2007년 CONCACAF U-20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2007년, 그는 캐나다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할 선수 명단에 일므을 올렸다. 디 마리아는 이 대회에서 3골을 기록했고, 아르헨티나는 대회 정상을 차지했다.[68]
2008년 1월 28일, 디 마리아는 일부 U-20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할 아르헨티나 U-23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그는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105분에 리오넬 메시의 결승골을 도와 2-1 승리에 일조했다.[69] 8월 23일, 디 마리아는 나이지리아와의 결승전에서 57분에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슛으로 1-0 결승골을 기록했고,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이기고 2대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70]
성인 국가대표팀
2008년 9월 6일, 디 마리아는 파라과이전에서 아르헨티나 성인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71]
2010년 FIFA 월드컵
2010년 5월 19일, 디 마리아는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에 의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201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할 23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72] 5월 24일, 디 마리아는 캐나다를 상대로 첫 국제경기 득점을 기록했는데, 그는 페널티 구역 밖에서 쏘아 골대를 치고 집어넣었고, 아르헨티나는 친선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두었다.[73] 그는 조국이 8강에 오르는 과정에 아르헨티나의 5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이 중 선발로 4번 출전했다.[74]
FIFA 월드컵 대회 후인 2010년 8월 11일, 디 마리아는 더블린의 아비바 경기장에서 벌인 아일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또다시 골을 기록했고, 아르헨티나는 1-0으로 이겼다.[75]
디 마리아는 2014년 FIFA 월드컵 예선전 경기에 12번 출전했고,[71]대회 본선에 참가할 아르헨티나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77]스위스와의 16강전에서, 그는 118분에 리오넬 메시의 도움을 받아 1-0 결승골을 기록했다.[78] 디 마리아는 벨기에와의 8강전에서 허벅지 근육이 찣어지는 부상을 당해 경기장 밖으로 실려나갔다. 이후, 디 마리아는 부상으로 대회의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79] 그는 앞서 곤살로 이과인의 1-0 결승골을 도와 아르헨티나의 준결승행에 일조했다. 디 마리아의 결장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4강에서 한 수 아래의 네덜란드를 상대로도 승부차기 끝에 겨우 이겼으며 결승에서 연장 혈투 끝에 마리오 괴체의 골로 인해 독일에 이어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80]
7월 11일, 디 마리아는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 볼의 후보 1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81]
2014년 9월 3일, 세계 정상에 오른 독일과의 친선 원정 경기에서, 디 마리아는 아르헨티나의 4골에 모두 관여해 4-2 승리를 견인했으며, 3골을 돕고 1골을 넣었다.[82]
2015년 코파 아메리카
2015년 5월 28일, 디 마리아는 2015년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할 아르헨티나의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83] 6월 6일, 리오넬 메시가 결장한 경기에서 주장을 맡아 볼리비아와의 연습경기에서 2골을 넣어 5-0 승리를 이끌었다.[84] 한 주 후, 라 세레나에서 벌어진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디 마리아는 페널티킥을 얻어내 메시가 골로 연결했고,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85] 6월 30일, 그는 2골을 넣고 세르히오 아궤로의 골을 도와 아르헨티나가 파라과이를 6-1로 꺾고 결승전에 오를 수 있게 도왔다.[86] 그는 개최국 칠레와의 결승전에서 힘줄 부상으로 30분도 안되어서 교체로 나갔고, 경기는 득점 없이 무승부를 거둔 끝에 승부차기로 패했다.[87]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2016년 6월 6일, 아르헨티나는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첫 상대로 전 대회 우승국 칠레를 상대했고, 디 마리아는 선제골을 기록한 뒤 에베르 바네가의 골을 도와 2-1 승리를 견인했다. 디 마리아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조모에게 골을 바쳤다.[88] 6월 10일, 파나마와의 2차전 경기에서도 니콜라스 오타멘디의 골을 도왔지만, 부상으로 경기장을 나갔다. 아르헨티나는 경기를 5-0으로 이겼다.[89] 그는 남은 대회 경기에 결장했는데,[90] 아르헨티나는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 두 대회 연속으로 진출하고도 칠레와의 결승전에서 0-0으로 비긴 뒤 또 승부차기에서 졌다.[91]
2018년 FIFA 월드컵
카를로스 테베스가 국대에서 완전히 빠지면서 그 동안 달고 있었던 등번호인 7번을 에베르 바네가에게 물려주고 디 마리아는 테베스가 달았던 11번을 달고 계속 11번을 달게 되었다.
계속 활약이 없다가 16강 프랑스 전에서 굉장히 멋진 슈팅으로 동점골을 기록했다. 팀은 잠시 역전했으나 골키퍼 문제로 인해 도로 재역전 당했으며 팀은 3-4로 패해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치욕스러운 성적인 16강에 머물러야 했다.
2022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 전에서는 선발 출장했으나 이상하게 경기가 꼬이면서 패배했다. 그 이후 조별리그에서만 잠시 활약하다가 16강 진출 이후 계속 벤치에 앉았다. 이것은 리오넬 스칼로니의 계략이었는데 디 마리아를 꼭꼭 숨겨놓아 계속 노출을 회피해 디 마리아가 한 물 간 것처럼 위장했다. 애초에 스칼로니 감독은 우승을 넘보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라운드에서 디 마리아를 쓰지 않고 큰 라운드에서 한 방을 노리기 위해 일부러 디 마리아를 계속 벤치에 앉혀 놓은 것이다. 그래서 결승 프랑스전이 되자 스칼로니는 과감히 디 마리아를 선발로 출장시켰다. 디 마리아는 이 경기에서 종횡무진 활약해 1 패널티킥을 따내 그 패널티킥을 친구인 리오넬 메시가 넣었으며 이후 디 마리아 본인이 알렉시스 마크 알리스테르에게 어시스트를 받아 직접 골을 넣었다. 전반전은 스칼로니가 짜 놓은 판에 프랑스가 말려들면서 일방적인 경기가 되었다.
하지만 후반전에 디 마리아는 교체 되었다. 이게 원인이 되어 그 동안 꼼짝 못하던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가 살아나면서 음바페에게 해트트릭을 당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골키퍼인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의 맹활약으로 팀은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통산 3회째 우승을 달성했다.
2024년 코파 아메리카
디 마리아는 이 대회를 우승으로 장식하며 명예롭게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플레이스타일
디 마리아는 발이 빠르고, 기민하며, 재능있는 측면 미드필더로, 천부적인 왼발잡이이나 좀 더 가운데의 공격형 미드필더나 양쪽 측면을 담당할 수 있다.[92] 근래에 들어, 그는 중앙 마드필더로도 큰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카를로 안첼로티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더욱 두드러졌다.[93] 디 마리아는 민첩하고, 창조적이며, 기술이 뛰어난 선수로, 드리블 능력과 공 제어 능력, 좋은 발놀림, 체력, 그리고 가속을 지니고 있어, 1대1 상황에서 선수를 손쉽게 제칠 수 있다. 그는 넓은 시야도 지니고 있어, 프리킥 상황, 패스, 그리고 크로스에 용이하며, 스스로 득점하는 능력도 출중하나 플레이메이커나 도움 제공자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비록 키는 크지만 저체중으로 인해 체격적으로 좋은 선수는 아니나, 근면한 선수로, 주제 모리뉴 감독 체제에서 수비 능력도 키워 나갔다.[94][95]
주특기로는 엄청나게 멋있는 터닝 슛을 날리는 것이 있는데 2018년 FIFA 월드컵 16강 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넣은 골과 2021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넣은 골도 이 터닝슛이었다.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종목에서도 이 슈팅으로 나이지리아를 이기고 우승했다.
결승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큰 경기에서 유난히 강하다. 그가 골을 넣은 결승전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결과가 났다. 희한하게 경기 단위가 커질수록 활약이 커지는데 조별리그에서는 그저 그렇게 활약하지만 16강, 8강, 4강 등에서 활약이 점점 커지며 결승전에서 그 활약이 절정에 달하는 선수이다.
그는 2011년에 같은 아르헨티나인인 호르헬리나 카르도소를 배우자로 맞이했다.[99] 둘 사이에 딸 미아를 두고 있는데, 3달 미숙아이며 마드리드의 몬테프린시페 대학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통해 생존했다.[99][100]
2015년 1월 31일, 체셔 주 프레스트버리에 있는 디 마리아의 집은 강도 미수 사건의 현장이 되었다.[101]
기타
리오넬 메시가 우승한 국제대회에서는 항상 결승전에서 디 마리아가 골을 넣었다. 2008년 하계 올림픽 결승전 나이지리아전(1골, 1-0), 2021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브라질전(1골, 1-0), 아르테미로 프란키 트로피 컵 결승전 이탈리아전(1골(2번째 골), 3-0), 2022년 FIFA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전(1골(2번째 골), 3-3(승부차기 4-2)) 로 디 마리아가 골을 넣고 전부 우승했다. 만약 2014년 FIFA 월드컵 결승전 독일전에서 디 마리아가 출전했더라면 그 월드컵의 우승팀은 독일이 아닌 아르헨티나가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Official announcement”(PDF) (포르투갈어). CMVM – Portuguese Securities Market Commission. 2010년 6월 28일. 2011년 9월 2일에 원본 문서(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7월 16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