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東大門運動場, Dongdaemun Stadium)은 대한민국서울특별시에 있었던 스포츠 시설 단지다. 개장 당시 명칭은 '경성운동장'이었고 1945년에 '서울운동장'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서울종합운동장이 개장되면서 1985년에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하였다. 정확하게는 동대문운동장이 축구장과 야구장을 비롯한 모든 체육 시설을 통칭하는 용어이지만 축구장을 동대문운동장 그리고 야구장은 동대문야구장으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운동장에는 스포츠 용품점과 벼룩시장이 있었으나, 기존 스포츠 용품 시장 기능은 2호선 종합운동장역 7번 출구 방향으로, 벼룩시장 기능은 인근 신설동의 서울풍물시장으로 이전되었다. 독립운동가 김구와 의친왕의 아들인 이우의 장례식이 거행된 장소다.[6]
역사
본래 동대문운동장 터의 일부는 조선시대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과 군사훈련을 담당하던 훈련도감이 있던 곳이다. 또 일부는 서울성곽이 있던 곳으로 성곽을 통과하는 수문이던 이간수문도 있었는데, 2008년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경성운동장(京城運動場)은 훈련원 동쪽 광희문과 동대문 사이의 공원지에 해당하는 대지 22,700평에 총공사비 155,000원을 들여서 만든 동양 제일의 경기장이었는데, 1925년에 조선총독부가 히로히토일본 제국 황태자 결혼 기념 사업에 따라 경성부에 건립했다. 경성운동장은 경성부 토목과장인 이와시로(岩城)의 공사 지휘로 1925년 5월 24일 기공해서 동년 10월 15일에 개장식을 거행하였으며 개장 당시 수용 인원은 25,800명이었다.[1] 또한 육상 경기장, 야구장, 수영장, 테니스장이 부속 건물로 건립되었다.
1945년 해방 후 이름이 서울운동장으로 바뀌었고, 1959년에는 야구장이 재개장하였다. 동대문운동장은 운동경기와 함께 대규모 집회 등 현대사에 큰 일들이 있었던 곳이다. 1984년 서울종합운동장(현 잠실종합운동장)이 개장되어 1985년 1월부터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되었다.[7][8]
시설
주경기장
동대문운동장 주경기장은 축구와 육상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경기장으로 실제 경기는 1926년부터 개최되었으며 주로 축구 경기에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동대문축구장으로 많이 불리었다. 2002년 대학축구경기를 마지막으로 2003년3월 1일부로 폐쇄되었으며, 그 후 주차장 시설과 동대문 풍물시장이 축구장 필드 자리에 들어섰다.[9]
대한민국 축구의 클래식 더비 매치인 경평축구대항전을 비롯하여 한국 프로축구 수퍼리그의 역사적인 원년 출범 경기를 비롯해서 일화 천마 (현 성남 FC)가 1989 시즌부터 1995 시즌까지, LG 치타스 (현 FC 서울)가 1990 시즌부터 1995 시즌까지, 유공 코끼리 (현 제주 유나이티드)가 1991 시즌부터 1995 시즌까지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였다.[10]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서울 연고 프로축구단들이 지방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후에는 K리그의 중립 경기와 특정 리그컵 경기들이 벌어졌으나 2000년 10월 22일 성남 일화 천마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리그컵 (아디다스컵) 결승전 경기를 마지막으로 프로축구 경기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한편, 1996년 연고지를 천안-안양으로 각각 이전한 일화 LG는 당시 홈구장으로 쓰인 천안오룡경기장안양종합운동장에 야간조명시설이 없어 그 해에 대부분 동대문운동장에서 홈경기를 치뤘으며 안양종합운동장은 1997년 5월 야간조명이 설치됐고[11] 일화는 앞서 본 것처럼 1996년 연고지를 천안으로 옮기면서 홈구장으로 사용한 천안오룡경기장에 조명시설이 없어 야간경기가 불가피한 혹서기에 접어들자[12] 1999년 동대문운동장에서 4번 홈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성을 감안해 흔적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주경기장 동쪽 관중석 뒷편에 있던 조명탑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으며 주경기장의 성화대도 철거 과정에서 떼낸 뒤 공원 내부에 전시하고 있다. 또한 영상, 사진, 소품들을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는 동대문운동장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후 2009년5월 21일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개장하였으며, 2014년3월 21일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개장했다.[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