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 다로(일본어: 桂 太郎, 1848년1월 4일 ~ 1913년10월 10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제11, 13, 15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고, 대만협회학교를 창립하여 초대 교장을 지냈다. 다로는 통칭이며 본명은 기요즈미(淸澄)이다. 자작에서 공작까지 승작한 불세출의 인물이다.
1913년, 가쓰라 3차 내각이 열렸다. 그러자 가쓰라를 비판하며 헌정 옹호 운동이 일어났고, 급기야 2월 10일에는 민중들이 의회를 둘러싸고 어용 신문사와 경찰을 습격했다. 결국 가쓰라는 퇴진했고, 내각은 붕괴했다. 이것은 일본 역사상 최초로 민중이 내각을 무너뜨린 예가 되었다.[1]
그는 이로부터 몇 달 뒤인 1913년10월, 도쿄에서 사망했다. 사후 공작위는 장손 고타로가 습작하였다.
평가
가쓰라는 경험이 많은 정치인이었지만 군비 확장과 대외 세력 확대에만 열중했다. 또한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오른팔 노릇을 하면서 그 정적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하고, 한편으로는 사이온지 긴모치와도 신을 잡는 등 눈치 빠른 정치인으로, 현대 일본 자민당의 눈치 정치·파벌 정치의 원형이 되었으며, 조선 식민화를 주도한 등의 대외정책은 일본에 큰 화근을 남겼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