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과 후에 폐서인이 되어 죽은 성종 부인 윤소화, 내시 김처선은 어릴 때 우연히 만나 가까이 지냈다. 성종과 소화는 정표를 나누어 가진 사이였고 처선은 남몰래 소화를 사모했다. 소화가 성종의 후궁이 되자 처선은 스스로 거세하고 내시가 되어 입궐한다.
처선은 판내시부사 조치겸의 양자가 되고 중전이 별세하자 후궁 소화가 중전에 오른다. 그러나 새 중전 소화는 친정의 세력이 없어 어려운 처지에 몰리고 강직한 성격의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와도 갈등을 겪는다. 남편 성종이 왕실 종친의 아내 어을우동과 외도를 하면서 이런 갈등이 격화되다가 오해를 받아 중전 자리에서 쫓겨나고 사저로 유폐되어 사약을 받는다. 폐서인 소화는 처선에게 어린 연산군이 훌륭한 임금이 되도록 지켜 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을 연모하던 처선의 품에 안겨 눈을 감는다.
성종이 죽고 연산군이 보위에 오른다. 폐비 윤씨의 사건이 김자원의 발설로 연산군에게 알려지자 생모를 그리워하는 연산군은 어질고 총명하던 성격이 점점 난폭해지고 왕실과 조정에서 피바람을 일으키며 어머니의 원한을 갚아나간다. 연산군의폭정과 호화로운 생활은 당연히 민중들의 원한을 사고 처선은 술과 유흥을 중지하고 성군이 되라는 간청을 올리다 연산군의 칼에 무참히 살해된다. 결국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고 연산군은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된다.
성종 초비 한명회 딸 공혜왕후는 성종이 왕이 되기 전에 혼인하였는데 드라마에서는 성종이 즉위한 후 간택된 것으로 그린다.
당초 50부작에서 16회 늘어난 66부작으로 종영할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된 건 후속으로 방송·편성 예정된 《카인과 아벨》 제작 지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나[5] 대본이나 제작 여건이 충족되지 못 하는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이 드라마의 첫 방영이 미뤄져 3회 축소된 63회로 간신히 막을 내렸다.
쇠귀노파(쇠기노파) 역의 여운계가 건강 문제로 도중 하차하여 김수미로 배우가 바뀌었다.[6]
2008년 1월 5일을 기해 김재형 연출자가 도중 하차하였다.[7] 연출자 교체 원인은 고령인 김재형 PD의 건강 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출연자 중 1명인 전인화 남편 유동근이 제작진을 폭행한 사건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나 MBC 월화 드라마 《이산》에 뒤지는 시청률 부진과 연관이 있다는 추측도 있다.[8]
당초 《내 남자의 여자》 후속으로 방송·편성할 예정이었는데 캐스팅 상의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오자[10] SBS는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대타로 올렸고 이 때문에 《강남엄마 따라잡기》 후속으로 바뀌었으며 원래 2007년 8월 20일에 첫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16부작으로 기획·방송되었던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2회 연장된 18회로 종영함에 따라[11] 2007년 8월 27일로 첫 회가 편성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