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군 초기 대한민국 국군의 계급 체계는 지금과 많이 달랐으며, 계급장의 경우 장교, 준사관은 옷깃에, 이등병부터 특무상사까지의 병, 부사관은 군복 상의 왼쪽 중앙에 있는 주머니에 부착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의 국군 부사관 계급장은 지금과 달리 병장 계급장 위에 있었으며, 부사관 권익신장이라는 명목하에 부사관 계급장 부착 위치가 장교와 동일하게 변경되었다.
↑건군 초기 대한민국 국군 장성 계급장은 미군의 장성 계급장과 같은 별 형태(1946년 장성급 계급장 제정 당시에는 지금의 무궁화 받침 마크가 없었다.)로 지정했으며, 건군 초기에는 장성 계급으로 임관한 사람이 있었다. 1948년에 국군 준장으로 임관한 김홍일 장군이 대표적인데 일반적으로 장교는 소위로 임관하여 군생활을 시작하지만 김홍일 장군의 경우는 중국 국민혁명군 중장(중국군의 경우 준장 계급이 없기 때문에 2성 장군을 중장으로 호칭한다.) 경력이 인정되어서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 지시를 받아 대한민국 국군 준장으로 임관하였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단장 박웅 장군은 바로 김홍일 장군의 국민혁명군 시절 이름인 왕웅을 모티브로 설정했으며, 군 경력자가 아닌 이상 초임 계급이 장성인 경우는 북한 같은 매우 특수한 국가를 제외하면 현대에는 없다.
↑이 계급부터는 군인사법 제 17조 2항에 의거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이 가능하고, 국방부장관의 추천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직접 진급심사를 시행한다. 현재 원수는 대한민국 국군 장성 계급 상 존재하지만 실제로 임명된 사례가 없으며, 백선엽 장군이 원수 진급심사를 시도했으나, 일본군이 대한독립군을 괴멸시킬 목적으로 창설한 간도 특설대에서 한인 장교로 복무한 친일 행적으로 인해 무산되어서 예비역 육군 대장으로 전역하였다.
↑장성의 다른 계급(준장, 소장, 중장)과는 달리 대장부터는 진급 조건이 매우 까다로우며, 소위로 임관하면 중장까지 소대장이나 그와 상응하는 지휘보직을 모두 이수해야 한다. 소대장, 중대장, 대위급 참모, 소령급 참모, 대대장, 중령급 참모, 연대장, 여단참모장, 여단장, 사단참모장, 사단장(병과가 기갑일 경우 기계화보병사단장직을 반드시 역임해야만 한다. 현재로서는 박찬주가 유일하게 기갑 출신 대장이다.), 군단참모장, 군단장직을 반드시 역임해야 하며, 육군의 경우 보병병과에 한해서 특전사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어야 대장으로 진급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성립된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 육군에 소속된 장성급 장교 중 현역 대장으로 복무 중인 장군의 이력을 살펴보면 주로 지휘 보직이 적은 소령 시절에 특전사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 역대 합참의장 중 이순진 장군이 특전사 복무 경력이 없음에도 육군 3사관학교(이하 非육사) 출신 최초로 대장 진급하여 제 2 작전사령관직과 합동참모의장직을 역임하고 예비역으로 명예 전역하였다.
↑건군 초기에는 미국 군정청 국방사령부 군무국의 비숍 대령이 미군 준위 계급장을 모방한 형식으로 고안한 것을 정식 장교 계급장으로 지정하였는데, 건군 초기 대한민국의 영관은 놋쇠 판에 태극 문양을 계급으로 표시하고 현재 명칭으로 불렀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이 계급부터 군의 고위관료로 분류되며, 준장 진급에 실패하고 예비역으로 전역하더라도 대령 연합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하여 국방 현안에 관여할 수 있다.
↑건군 초기에는 미국 군정청 국방사령부 군무국의 비숍 대령이 미군 준위 계급장을 모방한 형식으로 고안한 것을 정식 장교 계급장으로 지정하였는데, 건군 초기 대한민국의 위관은 놋쇠 판에 은색 각형을 계급으로 표시하고 현재 명칭으로 불렀다.
↑건군 초기 대한민국 국군 준사관은 놋쇠 판만 계급장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북한의 군대 계급에는 준사관이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