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불교는 침류왕(枕流王) 1년(384)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晋)에서 백제로 들어옴으로써 최초로 전래되었다. 침류왕이 이 외국 승려를 환영했고 궁중에 있게 한 것으로 보아 이미 백제에 그 이전부터 불교가 전해져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1]
백제 최대의 사찰인 익산 미륵사가 무왕 때 창건되어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호국 사찰이었다.[2]
성왕 때,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538년).[4] 성왕은 긴메이 천황(재위 539년 ~ 571년)에게 사신과 함께 불상 및 불경을 보냈다. 이때 백제에서 건너온 물품 속에는 불교의 교리는 탁월하나 난해하고, 그것을 믿으면 무한한 복이 있을 것이라는 편지도 있었다.[5] 그리고, 백제는 석가불금동상 1구, 번개(幡蓋) 약간, 경론(經論) 약간권을 딸려서 달솔 노리사치계(怒唎思致契) 등을 일본에 파견(552년)하였다.[6] 이 번개는 그 장엄함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일본서기》에 기록될 정도이므로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7] 552년에는 사원 건설을 위해 백제의 많은 학자와 기술자들이 일본에 파견되었다.[8]
577년(위덕왕 24년, 비다쓰 천황 6년)에는 백제에서 일본으로 경론 몇 권, 대대적인 학자와 율사 · 선사 · 비구니 · 주금사 등 승려 집단, 불상 만드는 기술자, 사찰을 지을 목수들이 파견되었다.[9]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절과 부처 등을 만들었다.[10] 그 뒤, 금속공예사, 기와 굽는 기술자들까지 건너갔다.[11] 583년에는 비다쓰 천황의 요청으로 고승 일라(日羅)가 건너갔다.[12][13] 584년 백제는 다시 왜국에 불상 1구와 미륵상 1구를 보냈다.[14] 588년(위덕왕 35년)에 백제는 불사리(佛舍利)와 승려 여섯 명, 노반박사(鑪盤博士)로서 장덕(將德) 백매순(白昧淳), 와박사(瓦博士)로서 마나문노(麻奈文奴) · 양귀문(陽貴文) · 석마제미(昔麻帝彌) 등 네 명, 화공(畵工) 한 명 등 사찰 건설에 필요한 기술자를 일본에 파견하여 백제의 공예미술이 일본에 널리 전파되었다.[15][16][17]
602년 관륵(觀勒)이 일본에 건너가 천문·책력·지리· 둔갑방술(遁甲方術) 등에 관한 많은 책을 전하고, 불교를 전파하였고,[18][19] 일본 최초의 승정(僧正)이 되었다.[20] 이리하여 백제는 일본 불교의 연원지(淵源地)가 되었으며 아울러 탁월한 불교예술을 진작시켰다.[21]
↑〈불교의 전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도서출판 범한. 2004. 백제(百濟)에는 침류왕(枕流王) 1년(384)에 인도승(印度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晋)에서 들어왔다. 왕은 이 외국 승을 환영했고, 궁중에 있게 한 것으로 보아 백제에도 그 이전부터 불교가 전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은직 (2005). 《조선명인전》. 정홍준 역. 일빛. 28쪽. ISBN8956450889. 백제는... 538년에는 불교를 전파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03). 《세계 종교사 입문》. 청년사. 229쪽. ISBN8972783765. 일본에 불교가 도입된 것은 538년 C.E(일설에는 552년 C.E.)이다. 당시의 일본 왕 긴메이(欽明) 천황이 백제의 성왕(聖王 또는 聖明王)이 사신과 함께 보내온 불상 및 불경을 받은 것이 그 시초였다. 이때 백제에서 건너온 물품 속에는 불교의 교리는 탁월하나 난해하고, 그것을 믿으면 무한한 복이 있을 것이라는 편지도 있었다고 한다.
↑〈卷第十九 欽明天皇〉. 《일본서기》. 720. 十三年...冬十月、百濟聖明王、更名聖王。遣西部姬氏達率怒唎斯致契等、獻釋迦佛金銅像一軀・幡蓋若干・經論若干卷。 (13년(552년) 겨울 10월, 백제의 성명왕(혹은 성왕이라고도 한다)이, 서부달솔 희씨 노리사치계를 보내어 석가불금동상 1구와 깃발 약간, 경전 여러 권을 보냈다.
↑고유섭 (2005). 《구수한 큰맛》. 다할미디어. 160쪽. ISBN8989988241. 원래 백제의 공예는 고도로 발달되었나니, 성왕 3년에 일본에 전한 번개(幡蓋)는 그 장엄함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일본 정사에 특히 그 기록이 실려 있는 것만 보더라도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겠고, ...
↑이은직 (2005). 《조선명인전》. 정홍준 역. 일빛. 28쪽. ISBN8956450889. 552년에는 사원 건설을 위해, 많은 학자와 기술자를 비롯하여 의사나 음악가까지 파견하였다.
↑최범서 (2006). 《야사로 보는 삼국의 역사1》. 가람기획. 166쪽. ISBN8984352411. 그 후 위덕왕 24년에 백제왕이 경론 몇 권, 율사律師 · 선사禪師 · 비구니 · 주금사呪噤師 · 조불공造佛工 · 조사공造寺工 등 6명을 보내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절과 부처 등을 만들었다.
↑최용범 (2008).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페이퍼로드. 48쪽. ISBN9788992920162. 백제는 그 뒤 577년(위덕왕 24년)에 불상 만드는 기술자, 절 건축자를 보냈고, 이어 금속공예사, 기와 굽는 기술자까지 보냈다.
↑고유섭 (2005). 《구수한 큰맛》. 다할미디어. 160쪽. ISBN8989988241. 원래 백제의 공예는 고도로 발달되었나니, ... 위덕왕 35년에 노반박사(露盤博士)로서 장덕(將德) · 백미순(將德白味淳)의 도일, 와박사(瓦博士)로서 마나부노(麻奈父奴) · 양귀문(陽貴文) · 석마제미(昔麻帝彌)의 도일 등 백제의 공예미술이 널리 전파된 것을 알겠다.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2004). 《고대로부터의 통신》. 푸른역사. 285쪽. ISBN8987787796. 《일본서기》에 따르면, 민달천황 敏達天皇 원년(588)에 백제가 불사리佛舍利와 승려 여섯 명, 노반박사 露盤博士 한 명, 와박사 네 명, 화공畵工 한 명 등 사원 건설에 필요한 기술자를 일본에 파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