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에 속한 지역으로 부족연맹 사회가 이룩될 때 청양에는 지천 유역의 고리도평 (고리섬들)에 구로국이 무한천 유역의 용천들에는 사로국이 자리하였다.
백제시대
칠갑산 동쪽으로 정산면, 목면, 청남면, 장평면 지역에 열기현이 있었고, 칠갑산 서쪽으로 청양읍 대치면, 운곡면 그리고 남양면 일부 지역을 차지하는 고량 부리현이 있었으며, 비봉, 화성면과 홍성군 장곡면 일대가 속했던 사시량현이 있어서 지금의 청양군이 백제시대에는 3개현의 구역이 있었다.
신라시대
웅진 도독부에 속해서 웅주 29개현 가운데 열기현이 열성현으로 고량부리현이 청정현으로, 사시량현이 신량현으로 명칭이 바뀌어 백제시대와 같이 3개현의 구역이 있었다.
고려시대
청정현이 청양현으로 개칭되었고, 열성현은 정산현으로, 신량현은 려양현으로 개칭 되었으며, 성종때 행정구역을 10도 12주 510현으로 개편할 때 청양군은 하남도의 청양, 정산현으로 감무를 두었으며 려양현에도 감무를 두었다. 8대 현종 9년(1018)에는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청양현은 천안부에 속하였으며 그후 양광도에 속하기도 하였고 공민왕 5년에 양광도를 충청도로 부르게 되었다. 행인들의 왕래가 많아짐에 따라 전국에 22개의 간선 역로가 있었는데 그 중 청양에는 유양(정산)역과 금정(남양)역이 자리했었다.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청양현, 정산현이 되었으며, 18대 현종 5년(1664)에는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청양현이 정산현에 편입되어 청양현이 되었고, 고종 32년(1895) 행정제도 개편에 따라 청양현과 정산현은 각각 군이되어 청양군과 정산군이 되었으며, 청양군은 동상, 동하, 서상, 서하, 남상, 남하, 북상, 북하, 읍내의 9개면을, 정산군은 대박, 백곡, 복동, 잉화달, 청소 장촌, 관현, 적곡의 8개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4월 1일정산군을 병합하고 홍주군의 4개 면(화성, 여구향, 얼방 일부, 상전)을 편입하는 등의 개편을 하였다.[3] (10면)
충청남도의 정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으로 공주시, 서쪽으로 보령시, 홍성군, 남쪽으로 부여군, 북쪽으로는 예산군과 접한다. 비교적 산지가 많으며, 칠갑산이 유명하다.
산업
지역내 총생산
청양군의 2012년 지역내 총생산은 1조 9,133억원으로 충청남도 지역내 총생산의 0.7%을 차지하고 있다. 이중 농림어업(1차산업)은 2,206억원으로 비중이 낮고 광업 및 제조업(2차산업)은 1억 5억원으로 52.53%의 비중으로 차지하고 상업 및 서비스업(3차산업)은 6,877억원으로 35.94%의 비중을 차지한다. 3차산업 부문에서는 특히 사업서비스업(2.12%)과 공공행정(7.06%), 건설업(6.67%)과 도소매업(1.86%)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6]
상주인구와 주간인구
청양군의 2017년 12월 기준 상주인구는 33,426명이고 주간인구는 30,700명 주간인구지수가 105로 높다. 통근으로 인한 유입인구는 1,972명, 유출인구는 542명이고, 통학으로 인한 유입인구는 320명, 유출인구는 297명으로 전체 유입인구가 1,453명 더 많은데, 이는 충청남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7]
청양군의 행정 구역은 1읍, 9면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청은 청양읍에 있다. 면적은 479.30km2이며, 인구는 2015년을 기준으로 충청남도내에서 가장 적은 32,191명으로, 인구의 32.2%가 청양읍에 거주하고 있다. 1966년에는 105,354명이 청양군에 살고 있었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