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강동구는 광주군구천면이었는데, 구천이라는 지명은 조선 성종 때 이곳에 살던 판중추부사 어효첨(魚孝瞻)의 호를 따라 붙여졌다. 1979년 분구될 때 한강의 동쪽에 위치해서 강동이란 구명이 신설되었다.
아이가 넘을 만한 작은 산이라고 일컬어지는 아이재 또는 강의 서쪽아치(강 서쪽 강에 아차산과 언덕)와 함께 강의 동쪽 아치(강 동쪽에 일자산과 작은 언덕들) 라는 말이 강동의 어원이 되었다. 이로써 옛 경기도 광주/이천 사람들이 이르길 "서울에 거의 다 다다렀을 때 길 끝에 작은 두 재(언덕 - 치)를 지나쳐야 서울에 도착한다 " 고 말했는데 그것이 바로 서아재(아차산)와 동아재(당산재 - 천호동 별북망지언덕 - 고덕산(고지봉) - 일자산)이다. 실제로 강동의 작은 언덕들을 넘고 한강을 건너 아차산만 넘으면 과거 한양의 관할영역인 살곶이 다리가 나왔으니 그들은 이 언덕배기 나루터 마을을 그렇게 인식했던것 같다.
역사
신석기 시대
강동구 암사동에는 기원전 5000년경에 세워진 신석기 시대의 집터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를 서울 암사동 유적(사적 제 267호)이라 한다.
청동기 시대
한편 암사동선사주거지에서는 신석기 유물 뿐 아니라 민무늬토기 등 청동기 시대 유물도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강동구 고덕동과 명일동 일대에서 청동기 시대 당시 유물이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에도 강동구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백제
온조왕 14년(기원전 5년)부터 475년 개로왕까지 백제의 수도였던 하남위례성이 이 남측에 위치해 (지금의 풍납동으로 추정)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1960년대 학자의 의해 강동구 암사동과 천호동에서는 백제 시대의 토성으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되기도 해 이 곳이 백제의 영토였음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천호동~암사동 지역은 삼국시대때 백제의 초기도읍지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동북방향의 지역으로서 풍납토성 동북쪽~ 고덕산 사이에 이르는 지역이 바로 지금의 천호동과 암사동의 지역이다.
과거 해발50~60에 낮은 산들이 위치해 백제 초기도읍 북쪽지역의 방어와 한강의 범람으로부터 서민들을 지키는 마을로써 쓰였던것으로 추정된다.
강동구에서는 백제의 초대 임금인 온조왕(?~28)의 이름을 딴 온조대왕 문화체육관을 고덕동에 건설해 온조왕과 백제를 기념하고 있다.
고구려
백제의 영토였던 하남위례성은 475년장수왕의 침략으로 함락당해 고구려의 영토가 된다. 고구려는 강동구를 포함한 백제의 수도였던 곳에 한산군을 설치하고 551년나제동맹군에 의해 점령되기 전까지 이곳을 77년간 다스리게 된다.
신라
나제동맹으로 백제가 잠시 한강유역을 다시 차지하게 되었으나, 553년 신라가 동맹을 깨고 이 지역을 점령해 신주라고 이름 붙였다. 신주는 이후 북한산주, 한산주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남북국 시대인 757년에 이르러 한주라고 칭하고 현재의 경기도, 충청북도 북부, 황해도 일대를 관할하였는데, 강동구를 포함한 고구려 때 한산군 지역은 당시 한주의 중심지였다.
고려
성종 2년인 938년 강동구 일대는 광주목으로 개편, 일대가 마을로 발전하기 시작해 원터골에 명일원이라는 숙박시설을 보급하고 천호동, 명일동 지역에 역참을 설치한다.
조선
강동구 일대는 선조 10년(1577년) 광주부로 승격된다. 당시 강동구의 일대의 명칭은 조선 성종때 구천(龜川) 어효첨(魚孝瞻) 선생(先生)이 사셨던 고장이라하여 선생의 아호(牙號)를 따서 구천면(龜川面)이라 했으며
일제가 한일합방 이후 행정구역(行政區域)을 새로 정할 때 구천면(龜川面)의 이름에서 龜(거북구)자가 복잡하다하여 九(아홉구)자로 바꾸어 구천면(龜川面)이 구천면(九川面)으로 바뀐 것이다.
현종 8년(1667년) 현재의 암사동 일대에 구암서원(龜巖書院)이 건립되는데, 이 서원은 숙종 23년(1697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어 크게 성장하나 고종 8년(1871년)에 실시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허가 되었다. 이후 이 서원이 있었던 자리 인근에 서원마을이라는 자연부락이 들어섰다.
강동구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신도비(죽은 사람의 일생을 기록한 비석) 가 많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으로 연산군 2년(1496년) 3월에 건립된 광릉부원군 이극배의 익평공신도비, 헌종 12년(1846년) 건립된 옥천부원군 유창의 유창신도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96호) 등이 있다.
조선시대 때 광주군 구천면 지역엔 굽은다리, 벽동말, 차재말, 당말, 은호말 등이 존재했다.
일제 강점기
너른나루가 일찍이 고려, 조선시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서 일제시대에도 동쪽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의 요충지가 되었다. (송파와 더불어 양 마을이 홍수로 지위가 자주 바뀌고 - 좌로수참의 물목이 집중되던 곳이었다.)
구천면에서 가장 큰 지역으로 암사동과 천호동이 발전되기 시작해 1936년에 광진교가 지어졌다. 이로써 그 당시 제2한강교나 다름없던 다리가 놓여졌다.이와 동시에 일제는 조선시대 때 이미 만들어진 천호동과 암사동 지역에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로 가던 역(驛)과 장터길들을 우회, 재건하여 2차선 도로를 만든다. 이 길이 바로 지금의 구천면로이다.
강동구자기주도학습지원센터는 교육기관, 학생 및 학부모 모두가 이용/참여가 가능한 자기주도형 학습할동지원 및 진로·학습에 관한 상담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동시에 강동구 교육관련부서의 청사 기능이 있으며 서울특별시강동구 구천면로 385에 위치하고 있다. 2010년 민선 5기 구청장의 공약사항이었으며 6월 30일 강동구 자기주도학습지원센터 설립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10월 30일에는 자기주도학습 지원센터 설립조례를 제정했고 11월 30일에 센터를 개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