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8일: 법률 제19430호로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으로 개편되었다.
지리
진안군은 전라북도의 동부 산악권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무주군, 장수군, 남쪽으로 장수군, 임실군, 서쪽으로 완주군, 북쪽으로 충청남도금산군이 인접하고 있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형성한 진안고원과 소백산맥이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삼남지방 이남을 남서로 관통하며, 덕유산 등의 커다란 산이 형성되어 있다. 남으로 지리산으로 이어지고, 충북 영동의 민주지산에서 소백산맥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노령의 주봉인 진안군의 운장산을 이루고 진안의 부귀산을 거쳐 전주의 모악산, 정읍시의 내장산으로 이어진다. 이 양대산맥이 폭 10∼20km의 서남방향으로 아주 가까이 평행하며 고원을 이루는 양상이고, 해발 200∼400m의 산간 구릉지로서 약 82.4%의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진안고원에서 북으로 흐르는 금강[8]과 남쪽으로 흐르는 섬진강으로 수계가 구분되고 있다.[9]
진안군은 전주-거창간의 간선도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소태정을 통한 4차선이 개통되어 전주와의 교통이 원활하게 되었다. 또한, 국토종합계발계획에 의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가 될 전망이다.
용담댐이 완공되어 용담면을 비롯하여 주천면, 정천, 안천, 상전면과 진안읍 등 진안군 전체 면적의 절반에 해당되는 1000여 만평이 수몰되었지만,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등지에 맑고 깨끗한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기후
진안군의 평균적 기온의 분포는 10.6~12.9˚C를 기록하고 있다. 강수량은 1,306~1.732mm 분포로서 전국적으로 3대 다우 지역의 일부인 섬진강 상류이며, 증발량의 연간 변화는 5~6월에 144.8~149.1mm, 12~1월에 34.6~35.8mm이다. 일조량은 1,634~2,153 시간의 분포를 나타내고 있으며 다른 지방보다 벚꽃이 피는 시기가 5~6일쯤 늦다. 북서풍이 가장 많고, 10월 초순경 첫서리가 내리고 4월 20일 경에 끝서리를 볼 수 있다.[10]
1979년10월 16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마이산은 백두대간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위치하여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국가지정 명승 제12호(2003.10.31)로 지정된 세계적 명산이다. 산 전체가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암마이봉(686m)과 숫마이봉(680m)이 자연이 만든 걸작품으로 우뚝 서 있으며, 봉우리에 움푹 파여진 타포니 현상과 음양오행의 신비를 간직한 천지탑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시대별로 신라때는 서다산, 고려때는 용출산,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 조선 태종 때부터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전까지 담수호였으나 대홍수시 모래, 자갈 등이 물의 압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수성암으로 약 7,000만년전 지각 변동으로 융기되어 지금의 마이산이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민물고기 화석이 간혹 발견되는 자연이 만든 최대의 걸작품이다.[11]
용담호는 용담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이다. 용담댐은 진안군 용담면, 안천면, 정천면, 주천면 일부, 상전면, 진안읍 일부 등 1읍 5개면을 수몰시켜 만든 거대한 담수호로 댐높이 70m에 댐길이 498m의 콘크리트 차수벽형 석괴댐으로 담수 면적이 30km2, 총저수 용량이 8억 1,500만톤, 유효 저수용량이 6억 7,200만톤에 이른다. 이 댐은 유역변경식 댐으로 금강 상류의 물을 하루 135만톤씩 직경 3.2m, 길이 21.9km의 도수터널을 통하여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만경강 상류에 공급함으로써 전라북도 전주권의 생활 용수 해결을 목적으로 건설되었다.[12]
은수사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진안군 마이산에 위치한 은수사는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上院寺)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절 터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했다. 은수사 황혜수 주지 스님에 의하면 “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가 중창하였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 의하면 은수사란 이름은, 조선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탑사는 태고종단에 소속된 사찰로 마이산 속에 쌓여진 신비한 돌탑무리에 자리잡아 세워진 사찰이다. 이 사찰은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마이산 석탑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28년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까지도 이갑용(李甲用) 처사는 불교를 표방하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더 후기에 와 마이산을 찾는 치성인들의 수가 불어나자 이처사의 기도처이자 치성처인 토막은 어느때인가 함석지붕으로 새로이 지어지고 자연스럽게 삼신상과 불상이 안치되어 사찰화되었다.[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