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李孝祥, 1906년1월 14일경북대구~1989년6월 18일)은 일본제국과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5·6·7·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1963년 12월부터 1971년 6월까지는 7년 6개월 간 국회의장(6대~7대)을 역임했다. 이는 역대 국회의장 중 최장 재임기간이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고 세례명은 아길로이다. 본관은 성산이며 아호는 한솔이다.
생애
학창 시절
일본에 유학, 1930년 일본 도쿄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1936년 《가톨릭청년》지에 <기적>이라는 시를 발표하여 등단한 후 많은 작품, 특히 문학과 관련된 연구논문 등을 발표하였다.
교육 활동
1945년경상북도 학무국장에 취임, 1952년 경북대학 문리대 교수, 문리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0년 참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투신하였으나 1961년5.16 군사 정변으로 사퇴하였다. 그 뒤 영남학원(嶺南學園)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정치 활동
1963~1971년 6, 7대 국회의원,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IPU․APU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1973년, 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같은해 3월에는 공화당 의장서리 겸 당무위원이 되고, 1979년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공화당총재 상임고문에 취임하였다. 상훈으로는 서독 1급 대십자훈장, 교황청 대십자기사훈장, 말레이시아 판쿠안네가라 최고훈장 등을 받았다.
그가 박정희의 대통령 선거 때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 후보는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효시로 보기도 한다.[1]:305[2]:3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