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노이주시카고에서 태어나 미시간주그랜드래피즈에서 성장하였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상점 점원, 모델, 무용수 등으로 활동하였고, 워런(Warren)이라는 남성과 결혼하였으나, 1947년 이혼하였다.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한 후, 그 다음해인 1948년그랜드래피즈에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제럴드 포드와 재혼하였다. 하원의원 선거 출마자와 전직 무용수 출신의 이혼녀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으나,[1] 제럴드 포드는 무난히 당선되었으며, 이후 제럴드는 1973년 부통령이 될 때까지 연속으로 도합 13차례나 당선되었다.
영부인 시절
1973년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남편 제럴드 포드를 부통령으로 임명했고, 1974년8월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자, 남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어 베티 포드는 영부인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는 유방암에 걸려 투병생활 중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하여, 미국에서 유방암 문제를 환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녀의 유방암은 완치되었으나, 남편은 1976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그녀가 유방암 문제를 공개한 것이 남편의 선거 패배에 일조한 것이라는 비난마저 있는 등 선거 패배에 따른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한 그는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하며 지냈다. 그러나 용기있게 이를 극복하기로 하고, 알코올 중독 사실을 공개하고, 치료를 받겠다고 선언하였다.
이후의 세월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한 후 포드 부부는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로 이주하여, 1982년 그곳에 알코올·약물 의존증자 재활센터인 베티 포드 센터를 설립하여 사회운동에 헌신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91년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다.[2]베티 포드 센터에는 5만 명 이상이 거쳐 갔으며, 미국 내 최고 재활센터 중 하나로 꼽힌다.[3]
사망
남편이 사망한지 5년 후, 2011년7월 8일 랜초 미러지의 아이젠하워 진료소에서 93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