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하계 올림픽 축구는 영국런던에서 개최된 1908년 하계 올림픽의 정식 경기 종목이다. 남자 토너먼트전만 진행되었으며, 5개국에서 72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지난 1900년과 1904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팀 클럽간의 경기만 진행되었기에 국가경쟁전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었다.[1][2]
경기 결과 영국팀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당시 영국팀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는 물론 아일랜드까지 대표하는 단일팀이었다. 다만 올림픽에 나선 선수 전원이 잉글랜드 출신이었다. 한편 덴마크와 프랑스 A팀 간의 경기에서 덴마크의 소푸스 크뢸벤 닐센이 무려 10골을 몰아치면서 17-1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덴마크팀에는 유명 수학자 하랄 보어도 선수로 소속되어 있었으며 결승전 진출에 기여하였다.
축구 종목은 5개국에서 72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총 8팀이 출전할 수 있었으며 프랑스는 A팀과 B팀의 두 팀이 출전하였다.[4] 그러나 당초 출전하기로 했던 헝가리와 보헤미아가 대진표 설정 이후 재정문제를 이유로 경기에 불참하기로 결정하면서 6팀만 본선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일반적인 토너먼트전으로 진행하되 패자부활전 성격의 경기가 추가되었다. 원래 동메달전 이전에 탈락해야 하는 팀은 총 6팀이었으며, 10월 21일 예선전에서 패배팀들끼리 2차례의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불참으로 1차전은 10월 15일 패배팀 간의 예선전을 없던 일로 하고 프랑스 B팀과 스웨덴팀이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프랑스 B팀과 스웨덴팀, 그리고 준결승에서 패한 프랑스 A팀과 네덜란드가 10월 23일에 다시 한번 준결승전을 치를 예정이었으며 프랑스 A팀은 프랑스 B팀과, 네덜란드는 스웨덴과 맞붙고 이들 경기의 승자가 10월 24일 금메달 결정전에 앞서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두 팀 모두 10월 19일과 10월 22일에 각각 덴마크에 패하면서 남은 일정을 기권하고 귀국을 택했다. 따라서 남은 준결승전과 10월 24일 동메달 결정전은 취소되고 네덜란드 대 스웨덴 간의 준결승전이 동메달 결정전이 되었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