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회는 제1차 세계 대전 이래 벌어지는 첫 대회로, 패전 진영인 동맹국의 국가들(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비롯해 그들과 손잡은 불가리아와 튀르키예)은 이 대회에 초대받지 못하였다. 잉글랜드의 축구 협회는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헝가리가 연맹에서 제명되어야 한다는 제명이 거절되자 (그들과 뜻을 같이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와 함께) 국제 축구 연맹에서 탈퇴하였다. FIFA는 이에도 불구하고 타 종목의 선수들을 올림픽에 파견하는 국가들이 축구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방해받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하면서 영국 국가대표팀의 참여를 받아들였다.[2]
그러나, 이전 두 번의 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국가는 참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짐을 싸고 퇴장해야 했는데, 이들은 첫 판에서 노르웨이에게 1-3으로 패하였는데, 그에 따라 이 경기의 승자는 역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자축했다. (이후 노르웨이는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나치 독일을 꺾었고, 1993년에는 잉글랜드를 월드컵 예선에서 이겼으며, 1998 월드컵에서는 전 대회 우승국 브라질을 2-1로 이겼다)
결승전(이자 금메달 결정전)의 승자는 개최국 벨기에로 체코슬로바키아(이 나라가 참가한 사상 첫 국제 대회이다)가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퇴장당해 대회에서 실격되면서 자동으로 받게 되었다.[1]
벨기에는 폴란드가 제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지 못해 부전승으로 1라운드를 통과했고, 은메달과 동메달의 결정전은 8강에서 탈락한 국가들(이탈리아, 노르웨이, 스페인, 그리고 스웨덴)이 서로 맞대결을 펼쳐 메달을 확보한 네덜란드를 상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결승전은 매우 논란이 컸는데, 2020년 기준으로 국제 대회의 결승전이 중도에 중단된 유일한 경기였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경기 시작 40분 만에 판정에 대한 항의로 퇴장하면서 벨기에가 자동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경기 중단 순간에 벨기에가 체코슬로바키아를 2-0으로 이기고 있었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좌측 수비수 카렐 스테이너가 로베르 코페에게 비신사적인 행위를 범하면서 퇴장해야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선수들은 65세의 잉글랜드인 주심 존 루이스의 판정에 불만이 컸는데, 루이스 주심은 벨기에가 네덜란드와 치른 준결승전을 이미 주관했었고,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은(경기는 벨기에가 프랑스를 이긴 날과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찰스 레퍼드-브라운과 나이트 잉글랜드인 부심 이 앙리 라르노가 득점한 30분 골이 문제였다고도 생각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즉시 경기에 주관하는 심판의 판정에 즉시 항의으나,[참고 1] 받아들여지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는 이 대회에서 실격 판정을 받았다.
↑본래 프랑스어로 되어있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항의문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1. 이 경기에 잉글랜드인 부심이 배정되었는데, 각 참가국은 둘 중 한 명의 부심을 배정할 권리가 있다는 규정과 위배된다. 이 규정의 위배는 잉글랜드인 부심은 공평치 못하기 때문에 경기에서 우리에게 편파적이어서 우리는 경기의 취소를 원한다. 경기 직후, 우리는 이 소식을 로돌프 제일드라버르스 씨께 알렸다.
2. 이 경기 주심 루이스 씨의 대부분 판정은 잘못되었으며, 공개적으로 우리에 대한 잘못한 인상을 주었기에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벨기에의 득점은 주심의 오심으로 나온 것이며, 우리는 이 사달에 정밀한 조사를 원한다.
3. 경기 도중, 벨기에 군인이 관중들 사이에 등장해 경기장을 순찰하였고 그들의 도발적인 존재에 우리 선수들은 제대로 경기에 임할 수 없었다. 군인이 이끄는 경기장 난입과 우리 국기의 모욕에 따른 경기 끝의 불미스러운 상황에 따른 결과로 우리는 (벨기에) 군인들로부터 진심의 사과를 받기 전까지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7]
↑120분이 경과한 후, 양국은 1-1로 비겼지만, 양국의 주장과 주심 모두 10분씩 두 차례나 되는 추가적인 연장전을 치르기로 합의를 보았고, 그 결과 이 경기는 140분 동안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