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만년(解萬年, ? ~ ?)은 전한 말기의 관료이다.
행적
성제 때 장작대장을 지내고 있었던 해만년은 종사중랑(從事中郞) 진탕과 함께 이렇게 의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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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때의 장인 양광은 만든 물건이 무제의 마음에 들어 장작대장이 되었고, 대사농중승 경수창은 두릉(杜陵)을 조성하여 관내후에 봉해졌으며, 장작대장 승마연년은 노고를 인정받아 봉록이 중이천석에 이르렀다. 지금 능을 조성하면 해만년은 큰 상을 받을 것이고, 진탕 또한 집과 밭을 받을 것이니 서로에게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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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탕은 이익을 추구하는 생각에 성제에게 창릉(昌陵) 조성을 건의하였고, 해만년은 일을 삼 년이면 끝마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성제는 재가하고 작업을 시작하는 한편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그러나 5년이 되도록 일을 마치지 못하였고, 많은 신하들이 불편을 호소하였다. 결국 영시 원년(기원전 16년)에 작업이 취소되었고, 이듬해에 해만년과 진탕은 돈황으로 유배되었다.
출전
- 반고, 《한서》
- 권10 성제기
- 권70 부상정감진단전
- 권93 영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