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라고 불리는 레닌그라드에서 1981년5월 29일 태어났다. 아버지인 세르게이는 아마추어 축구선수였다.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인해 거의 죽을 뻔한 일을 겪기도 했다. 프로 선수가 되는데 실패했던 아버지는 아르샤빈이 축구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해 7살 때 제니트의 유스팀인 스메나 축구 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아르샤빈의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40세의 나이로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클럽 경력
아르샤빈은 스메나 축구 학교를 졸업하였다. 1999년부터 2000년 초까지 아르샤빈은 러시아 2부 리그에 참여하고 있는 제니트의 2부팀에서 활동하였다.
2000년에 제니트의 선수명단에 포함되었고, 그의 데뷔 경기는 잉글랜드의 브래드포트 시티와의 인터토토컵 경기로 3-0으로 제니트가 승리하였던 경기였다.[1] 그는 오른쪽 윙어로 시작하였으나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고, 결국엔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게 되었다.
유로 2008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샤빈은 여름 이적 시장으로 빅리그로의 이적을 희망했으나 이루어지지는 못하였고, 겨울 이적 시장이 다가오자 팀 훈련까지 불참할 정도로 제니트를 떠나려 했다. 그를 원하는 팀은 아스날이 유력하였고 겨울 이적 시장 내내 아르샤빈과 아스널 간에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결국 2009년2월 4일 아르샤빈은 정식으로 아스날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아스날에 입단한 이후 점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고, 33라운드 리버풀과의 경기에서는 혼자서 4골을 득점하며 지난 유로 2008과 UEFA컵에서 보여준 자신의 재능을 확실히 증명하여 주었다.
아르샤빈은 거스 히딩크가 지휘하는 러시아의 유로 2008 명단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는 징계로 인해 조별리그 두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는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넣으면서 그의 복귀를 알렸다. 이 경기의 승리로 러시아는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다음 경기인 8강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연장전의 첫 번째골에는 어시스트를 하였고, 4분 뒤에는 직접 골을 넣으면서 러시아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는 3-1로 네덜란드를 물리치고 4강전에 진출하였고, 그는 UEFA의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