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두 2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왕위를 요구했으나 그의 섭정이었던 만프레디가 1258년 왕위를 빼앗았다. 1252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콘라드에 대항하여 잉글랜드 출신의 에드문드에게 왕위를 부여하였고 1265년 다시 그 왕위를 앙주의 샤를에게 주었다. 앙주의 샤를은 1266년 만프레디를 내쫓고 시칠리아의 왕위를 계승한다.
앙주의 샤를(나중에 카를루 1세가 됨)이 1266년에 시칠리아를 점령하지만,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으로 인하여 시칠리아 섬의 영토를 잃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영토는 나폴리를 수도로 하는 나폴리 왕국으로 비공식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1282년후 시칠리아의 왕국은 시칠리아 섬 그 자체(아라곤 왕가)과 나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본토(앙주 카페가)로 분리되었다.
아라곤가, 1282–1409
아라곤왕 페로 3세는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으로 시칠리아섬을 점령하여 카를루 1세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앙주 카페가와 시칠리아계 바르셀로나가(아라곤 왕가의 분가)는 1302년 칼타벨로타 평화 조약을 맺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탈리아 본토의 왕국(나폴리 왕국)과 구분하기 위해 아라곤 왕가의 시칠리아 왕국을 트리나크리아(Trinacria)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