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이탈리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나폴리 왕국의 앙주 왕가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였고. 이를 빌미로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이탈리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때부터 대포가 유럽의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1] 결국 1495년2월 22일프랑스군은 나폴리에 입성하고 샤를 8세는 5월 12일 나폴리의 왕 카를로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밀라노, 오스트리아, 베네치아,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이러한 프랑스군의 약진에 위협을 느끼고,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반 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었다. 결국에는 동맹군이 포르노보 전투에서 프랑스를 격파하여 샤를은 프랑스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샤를은 이탈리아 원정을 계속하고 싶었으나, 전쟁으로 인한 프랑스의 빚이 너무 많아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당시 유행하였던 테니스와 유사한 죄드폼 경기를 보러가던 중 문틀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혔고, 다시 경기를 보러 가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9시간 뒤 앙부아즈성에서 어이없이 사망하였다[2] 샤를의 아이들은 모두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왕위는 발루아 왕조의 방계인 오를레앙 공작가의 당주 루이 2세(후의 루이 12세)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각주
↑페르낭 브로델 (1995). 〈제6장 기술의 보급: 혁명과 지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Ⅰ-2 일상생활의 구조 下》. 주경철 옮김. 서울: 까치. 549쪽. ISBN89-7291-084-8. 대포가 유럽의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 것은 1494년 9월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원정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