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월 5일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다나카 가쿠에이가 후쿠다 다케오를 누르고 차기 총재로 선출된 것에 의해 다음날인 7월 6일에 소집된 제69회 임시국회에서 중의원 및 참의원 양원에서의 수반 지명 선거를 통해 다나카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 곧바로 내각을 발족했다.
제1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시대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간의 국교정상화에 합의하는 중일공동성명이 1972년 9월 29일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에서 조인됐다. 이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중화민국과의 외교 관계도 단절됐다.
미이케·아리타는 당초 각료에 지명되면서도 그 직전에 있었던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후쿠다 다케오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입각을 거부했다. 그 후 후쿠다의 설득에 응하는 형태로 입각했다.
미키는 소위 무임소대신으로서 입각하여 8월 29일에 이른바 부총리로서 지명을 받았다. 이 때문에 7월 7일의 인증관 임명식 및 관보 게재 사령에서의 국무 대신으로서의 서열은 마지막으로 돼 있지만 같은 해 12월 22일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의 발족에 따르는 각료 지위 상실의 관보 게재에서는 나열 순서에서 첫 번째로 돼 있으며 또한 같은 제2차 내각에서도 국무대신으로서의 필두로 나열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