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극좌로 평가받는 공산주의 이념과 다르게 유럽 공산주의는 좌익에서 극좌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1]
개요
유럽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처음으로 1975년7월이탈리아 공산당에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각국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선두를 한 유럽의 공산당들은 전후 유럽에서 큰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소련의 공산주의를 따르며 소련의 지배력을 능가하는 공산주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과 소련의 비민주적인 정치와 독재가 전 세계적인 비판을 받으면서 서유럽의 공산당들은 자신들이 소련과 같은 억압정치세력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소련과 거리를 두고 선을 긋는 공산주의를 개발해야 했다. 또한 서유럽 거의 대부분의 국가는 어느 정도의 복지 수준을 갖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었는데 이 때문에 고전적인 공산주의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률이 높았고, 따라서 보다 선진국의 실정에 적합화된 공산주의가 필요했다. 또한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전의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들의 근간이었던 계급적대이론의 양대 계급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회 계층이 등장하게 되자 농민, 땅꾼, 어민, 하층 시민, 사냥꾼, 채집꾼, 산림업자, 축산업자, 낙농업자, 염전업자, 양봉업자, 여성, 빈민, 청년, 장애인, 고아, 노약자, 학생, 지식인, 양잠업자, 한부모가정, 미혼모, 노숙자, 취객 등의 비노동자 무산 계층으로 지지도를 확장하여 기독교 민주당과 같은 중도 정당과 연립 정권을 구상하는 방안이 고안되었다. 이탈리아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엔리코 베를링구에르는 기독교 민주당과의 연립 정권 수립을 위한 '역사적 타협'을 주창하였고, 미국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소련의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역시 비판하며 새로운 공산주의 노선을 추구하게 된다. 그 결과물이 유럽공산주의이다.
주요 내용은 각국의 상황에 따라 폭력을 수반한 혁명 대신 의회민주주의에 기초한 합법적 방법에 입각하여 공산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것, 소련과 몽골과 중국과 베트남 같은 일당제가 아닌 다당제 체제 하에서 공산주의를 실현할 것, 어느 정도의 사유재산제와 사기업을 허용할 것(중산층 및 서민계층의 지지를 염두에 둔 것이다.) 등이 있으며 사회관에 있어서는 유물사관과 변증법적 유물론 그리고 무신론의 곧이 곧대로 식의 수용이 아닌, 그람시 사상과 어느 정도의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였다.[2] 유럽공산주의는 또한 프랑스 5월 혁명의 영향으로 성장한 신좌익 세력들의 요구를 절대다수 수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