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다이로홋타 마사토시의 암살 사건으로 인해 고가 번주 홋타 마사나카가 야마가타 번으로 좌천되었다가, 1년 정도 있은 뒤 후쿠시마번으로 전봉되었다. 이어서 마쓰다이라 나오노리가 입봉하였지만, 역시 겐로쿠 5년(1692년)에는 시라카와번으로 옮겨갔다. 대신 시라카와 번에 있던 오쿠다이라 마쓰다이라 가문이 가신들의 분쟁으로 인해 좌천되어 야마가타로 돌아왔다가, 겐로쿠 13년(1700년)에 후쿠야마 번으로 전봉되었다. 이어서 후쿠시마 번에 있던 홋타 가문이 다시 돌아와 46년간 통치하다가 엔쿄 3년(1746년)에 사쿠라번으로 옮겨갔다. 이때 야마가타 지역의 가시와쿠라 4만 석 영지는 사쿠라 번의 원격 영지로 남았다. 홋타 가문 다음에는 오규 마쓰다이라 가문이 들어왔다가 메이와 원년(1764년)에 니시오 번으로 전봉되었다.
이후 3년간 막부 직할령으로 남아있다가, 메이와 4년(1767년), 아키모토씨가 입봉하여 78년간 이곳을 통치하였다. 아키모토 가문은 고카 2년(1845년)에 다테바야시번으로 옮겨갔고, 이때 우루시야마 4만 6천 석 영지가 다테바야시 번의 소유가 되었다. 그 해에 하마마쓰번에서 미즈노씨가 들어왔는데, 이는 덴포 개혁에 실패한 미즈노 다다쿠니가 실각하면서 그 아들 미즈노 다다키요가 좌천되어 들어온 것이었다. 보신 전쟁이 발발하자 야마가타 번은 요네자와번, 센다이번과 함께 오우에쓰 열번동맹에 참가하나, 동맹의 주요 번들이 항복하는 가운데 야마가타 번도 게이오 4년(1868년) 9월에 신정부군에 항복했다. 메이지 3년(1870년), 미즈노 가문은 아사히야마 번 5만 석 영지로 전봉되었고, 야마가타 번은 폐지되어 메이지 정부 직할령이 되었다.
번청의 위치를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지방으로 이전한 번도 있다. 순번은 『삼백 번 보신 전쟁 사전(三百藩戊辰戦争事典)』에 따른다. 메이지 시대의 변화: ★=신설、●=폐지、○=이전・개칭、▲=본번에 병합. 소괄호()안은 이전・개칭・병합된 후의 번명이다. 소괄호가 없는 것들은 현에 편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