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렌 레르뷔

쇠렌 레르뷔
개인 정보
본명 Søren Lerby
출생일 1958년 2월 1일(1958-02-01)(66세)
출생지 덴마크 쾨벤하운
1.84m
포지션 은퇴 (과거 미드필더)
청소년 구단 기록
B 1903
타스트루프 IK
프레마드 아마게어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75
1975–1983
1983–1986
1986–1987
1987–1990
프레마드 아마게어
AFC 아약스
FC 바이에른 뮌헨
AS 모나코 FC
PSV 에인트호번
013 00(3)
206 0(66)
089 0(22)
027 00(3)
081 0(16)
국가대표팀 기록
1973–1975
1974–1976
1976–1977
1978–1989
덴마크 U-17
덴마크 U-19
덴마크 U-21
덴마크
003 00(0)
014 00(2)
003 00(0)
067 0(10)
지도자 기록
1991–1992 FC 바이에른 뮌헨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쇠렌 레르뷔 (Søren Lerby, 1958년 2월 1일, 쾨벤하운 ~) 은 은퇴한 덴마크의 축구 선수, 감독, 라이센스를 갖춘 에이전트이다. 선수 시절의 대부분을 네덜란드 축구계에서 보냈으며, AFC 아약스 소속으로 5번 에레디비시를 우승하였고, PSV 에인트호번 소속으로, 유러피언컵을 우승하는 등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그는 또한 FC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두 차례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렸고, 1시즌 동안 프랑스 디비시옹 1AS 모나코 FC 소속으로 1시즌 활약하였다. 그는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67경기를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출장하였고, 1986년 FIFA 월드컵과 두 차례의 UEFA 유로에 덴마크 국가대표로 참가하였다.

플레이스타일

왼발의 미드필더로, 레르뷔는 팀의 리더로서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던 선수였다. 그의 행위는 두 차례 1985년 11월 13일 하루 안에 두 개의 다른 국가에서 경기를 치렀을 때 표시되었다. 이날 오후의 첫 경기는 아일랜드와의 FIFA 월드컵 예선전이고, 같은날 저녁에 소속팀인 FC 바이에른 뮌헨VfL 보훔과의 DFB-포칼 경기를 치렀다.[1]

레르뷔는 항상 양말을 내리고 (짧은 양말이나 긴 양말을 정강이 보호대 없이 내리고) 경기를 뛰었다. 이는 당시 드문 일이었고, 현재 이 행위는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바이오그래피

클럽 경력

쇠렌 레르뷔는 쾨벤하운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전 덴마크 U-21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던 카이 레르뷔 (Kaj Lerby)였다. 쇠렌 레르뷔는 지역 축구 클럽인 B 1903의 유소년팀에 입단하며 축구계에 입문하였고, 이후 타스트루프 IK와 프레마드 아마게어의 유소년팀을 거쳤다. 프레마드 아마게어에서 1군 데뷔전을 치른 그는, 이 클럽 소속으로 13경기 출장하여 3골을 1부 리그의 1975 시즌 동안 기록하였다. 그와 프레마드 아마게어의 팀 동료인 프랑크 아르네센은 1975년 11월에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하여 해외로 무대를 옮겼다.

이 두 선수는 아약스 암스테르담으로 옮겼고, 당시 레르뷔의 나이는 불과 17세였다. 레르뷔의 첫 홈 경기 상대는 고 어헤드 이글스였고, 이 1976년 4월 11일에 치루어진 경기는 아약스의 4-1 승리로 끝났다. 그는 아약스에서의 첫 6년간 3차례 에레디비시 우승을 거두었고, 그 시즌들은 1976-77, 1978-79, 1979-80 시즌이었다. 1981년 여름, 그는 RSC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한 프랑크 아르네센을 대신하여 팀의 새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레르뷔는 이어지는 두 시즌간 에레디비시를 두 차례 골득실 차로 우승하였다.

1983년 그는 독일로 이주하게 되었고, 은퇴한 파울 브라이트너를 대체할 미드필더로 FC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였다. 그는 이 팀 소속으로 3년을 활약하며, 두 차례 분데스리가 우승과 두 차례 DFB-포칼 우승을 거두었다. 1986년, 그는 프랑스 디비시옹 1AS 모나코 FC로 이적하여 한 시즌 활약하였다.

레르뷔는 1987년에 네덜란드 무대로 복귀하여 프랑크 아르네센과 재회하였는데, 그가 이적한 곳은 아약스의 라이벌인 PSV 에인트호번이었다. 그는 1987-88 시즌에 유러피언컵, KNVB 컵, 에레디비시를 모두 우승한 에인트호번의 트레블 주역이 되었다. 그와 같은 국적을 가진 선수로는 얀 하인체이반 닐센이 있었고, 프랑크 아르네센SL 벤피카와의 유러피언컵 결승을 앞두고 부상당하였다. 1990년, 그는 현역 은퇴를 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

그는 타스트루프 IK의 유소년 팀으로 활약할 때, 1973년 10월에 덴마크 U-17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되었다. 그는 1974년 4월에 덴마크 U-19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1974년과 1975년의 UEFA U-19 챔피언십에 참가하였다. 그는 U-21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도 3경기 출장하였다.

AFC 아약스에서 활약할 시절, 그는 1978년 5월에 아일랜드를 상대로 덴마크 성인대표팀 소속으로 데뷔하였고, 경기는 3-3 무승부로 종료되었다. 레르뷔는 UEFA 유로 1984에 참여하였고, 덴마크의 4경기에 모두 출전하였고, 스페인과의 준결승전에서 득점하였으나, 승부차기에서 패하여 탈락하였다.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그는 덴마크의 전경기에 풀 타임으로 출장하여, 6-1로 승리한 우루과이전에서 득점하였다. 그는 UEFA 유로 1988에도 참여하였다.

은퇴 이후

1991년 10월 9일과 1992년 3월 10일 사이, 그는 유프 하인케스의 뒤를 이어 FC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을 맡았다. 그는 친정팀 B 1903과의 UEFA 컵 경기에서 합계 3-6으로 패하여 탈락한 것을 포함하여,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그는 감독직을 더 이상 맡지 않았고, FIFA의 라이센스를 받아 에셀 스포츠 매니지먼트의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었다.

사생활

쇠렌 레르뷔는 네덜란드의 가수이자 영화 배우인 빌러커 알버티 (Willeke Alberti) 와 1981년에 결혼하였으나 나중에 이혼하였다. 둘 사이에 쇠렌 레르뷔의 아버지 이름을 딴 아들 카이를 두었다. 쇠렌은 나중에 아를러트 판 더 머울런 (Arlette van der Meulen) 과 결혼하였고, 둘 사이에 둘째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인 라런 (Laren) 에 거주하고 있다.

수상

AFC 아약스

  • 에레디비시: 1976-77, 1978-79, 1979-80, 1981-82, 1982-83
  • KNVB 컵: 1978-79, 1982-83

PSV 에인트호번

FC 바이에른 뮌헨

각주

  1. “Im Porsche Richtung Bochum”. 《11 FREUNDE》. 2008년 11월 18일. 2018년 8월 3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11월 19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