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남단에 위치해 있고, 후쿠오카시에서 남쪽으로 280km, 구마모토시에서 남으로 15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가고시마현의 사쓰마반도 북동쪽 및 사쿠라지마섬 전체를 차지한다. 가고시마 만을 바라보고 사쿠라지마섬 등에 연간 약 9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 도시이기도 하다.
평야부의 대부분을 상업지역, 주택지역, 공업지역이 차지하고 있고 경작지역은 거의 없다. 시가지에 가까운 경사지나 산간부도 많이 택지가 개발되어 단지나 뉴타운이 많다. 그러나 도시의 발전에 비해 도로의 개발이 따라가지 못해 아침, 저녁으로 어느 간선이든 정체가 심하다. 특히 다니야마 지구나, 요시노카타 방면으로부터의 통근 정체는 현저해 큰 과제가 되고 있다.
시역 중심부의 대안(직선 거리 약 4km)에 위치하는 사쿠라지마 섬은 1980~90년대에 비하면 꽤 잠잠해졌지만, 2000년 이후에도 아직 활발한 화산활동을 계속하고 있어 시 중심부에도 자주 화산재가 내린다. 활화산을 포함하면서 이만큼의 인구 규모를 가지는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현재까지도 가끔씩 폭발을 할때가 있다.
기후
온난하고 비가 많은 태평양측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은 18℃ 전후로 한여름날이 연간 80일 전후, 여름날은 연간 160일 전후인 데에 비해 겨울날은 연간 며칠 정도이다. 시가지가 한겨울이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교외의 구릉지나 산간부에서는 새벽녘에 0℃를 밑도는 일도 적지 않다. 또 시외의 주위 세방면이 험한 고개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매년 몇 차례의 강설도 있다. 연 강수량은 대체로 2,000~2,700mm 전후이고 태풍의 직격을 받는 일도 많다. 연 일조시간은 2,000시간 전후이다.
도시로서의 가고시마의 시작은 시마즈씨 6대 당주 시마즈 우지히사가 도후쿠지 성(가고시마 시 시미즈 정)을 거성으로 했을 때(1340년 경)로 보인다. 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현재의 시역에 해당되는 장소(기온노스 정)에 상륙해 일본 최초의 기독교 전래지가 된다.
19세기 중순에는 유럽의 기계 문명을 도입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28대 당주 시마즈 나리아키라 하에서 집성관(현·쇼코 집성관) 사업으로서 반사로나 용광로가 만들어져 일본의 근대 공업화의 발상지가 되었고 메이지 유신 때의 정치가, 관료, 군인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해 근대 일본 건설의 주춧돌이 된다. 중심 시가지는 사쓰에이 전쟁에 의한 포격, 세이난 전쟁에 의한 전화, 제2차 세계 대전의 공습으로 괴멸적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조카마치로서의 모습은 대부분 남아 있지 않다.
1871년 8월 29일, 폐번치현에 의해 현청 소재지가 되었다. 1889년 가고시마 시가 성립하였고 1901년 6월 10일에 가고시마 본선이 개통하였다. 1914년1월 12일에 사쿠라지마섬이 대분화하고 동시에 진도 7의 지진이 발생해 58명이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