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은 KBO 리그에서 프로 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1982년 시즌을 일컫는다. 한국 프로 야구가 처음 시작된 시즌으로서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는 서영무가 부임하였지만 코치 섭외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김성근조창수유백만 등이 거론됐으나[1][2] 모두 다른 팀에서 가로채간 상태라 불발되자 프런트를 통해 임신근(서영무 감독의 경북고 야구부 시절 제자)과 우용득(서영무 감독의 대구상고 후배)을 코치로 간신히 영입했고 이 과정에서 갈등의 조짐(경북고-대구상고 파벌로 나뉘어짐)이 시작됐으며 서영무 감독의 경북고 야구부 시절 제자[3]남우식에게도 투수코치 제안이 갔었다. 6개 구단이 참가한 첫 시즌, 삼성 라이온즈는 전기 리그에서 2위, 후기 리그에서 1위를 하였고, 전기 리그 1위 구단인 OB 베어스와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7전 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는 OB 베어스에게 1승 1무 4패로 패하면서 최종 2위, 준우승으로 1982 시즌을 마감하였다.[4]
삼성 라이온즈는 정규 시즌의 전기 리그에선 2위를 했으나 후기 리그에서 1위를 함으로써 전기 리그 1위 팀인 OB 베어스와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전기 리그 1위 팀의 홈 구장인 대전한밭 야구장에서 10월 5일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렸고, 양팀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연장 15회까지 갔음에도 결국 승부를 결정 짓지 못하고 3 : 3 무승부로 끝이 났다. 1차전 6회초, 삼성의 함학수는 2점짜리 홈런을 침으로써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기도 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은 후기 리그 2위 팀의 홈 구장인 대구시민 야구장에서 바로 그 다음날인 6일에 열렸다. 이 경기에서 삼성은 대거 9득점을 올렸고, 이선희의 호투로 OB 베어스의 공격을 0실점으로 막음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다.
3차전부터는 중립 구장인 서울의 동대문 야구장에서 열렸다. 2차전이 끝난 뒤 하루 쉬고 10월 8일에 3차전이 치뤄졌다. 이때만 해도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삼성이 초대 우승 구단이 될 것이라 예상을 했다. 하지만 3차전에서 접전 끝에 삼성이 2점차로 패하였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OB 베어스는 내리 연승을 하여 초대 우승 구단이 되었는데 삼성은 4차전 끝날 무렵 1차전(두 번째 투수), 3차전(두 번째 투수)에 이어 3경기째 등판한(두 번째 투수) 황규봉의 부친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으며[5]황규봉이 자리를 비운 뒤 다음 경기부터 던질 투수가 마땅치 않아 1차전(세 번째 투수), 2차전(선발)에 이어 3번째 등판한 4차전 선발 이선희가 자원하여 5차전 구원, 6차전 선발로 등판했으나 모두 패배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고 황규봉은 시리즈 종료 몇 주 뒤에 부친상을 당했다.[6]
허리 부상이 심했던 OB 베어스의 에이스 투수 박철순이 발휘한 투혼과 6차전 김유동의 만루 홈런이 결정적이었으며, 삼성 라이온즈는 OB 베어스보다 선수 자원이 좀 더 풍부한 편이었으나 시리즈 도중에도 음주-포커판을 벌인 데다 박철순 같은 슈퍼에이스를 보유하지 못하여 OB 베어스의 저력에 결국 밀리고 말았으며[4] 이 과정에서 임신근 투수코치가 우승 책임의 실패에 맞춰 시즌 후 팀을 떠나야 했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