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호 (야구인)

권영호
Kwon Yeong-ho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54년 1월 23일(1954-01-23)(70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신장 182 cm
체중 81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2년
드래프트 순위 원년 멤버
첫 출장 KBO / 1982년 4월 6일
광주해태
마지막 경기 KBO / 1989년 10월 2일
대구빙그레
획득 타이틀
  • 1985년 세이브왕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프런트 경력


권영호(權永浩[1], 1954년 1월 23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투수이자, KBO 리그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이다. 현재는 대구 경일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재직중이다.

선수 시절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함에 따라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멤버로 활약하였으며, KBO 리그 사상 첫 전업 마무리 투수로 활동하였다. 직구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체인지업과 제구력을 바탕으로 타자들을 농락했다.[2] KBO 리그 초창기 당시에는 보직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1984년까지는 선발로 등판하다가, 1985년 26세이브와 전·후기 통합 우승, 1986년 19세이브를 통해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다. 그러나 1985년, 1986년 당시에는 선발에 가까운 170이닝, 140이닝을 휴식 없이 소화해 냈기 때문에, 혹사의 우려 또한 심했는데 1982년 15승(11선발승)을 기록했지만 선수층이 옅은 현실에서 무리한 투구를 한 탓인지[3] 1983년 6승(5선발승), 1984년 6승(3선발승)으로 원년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며 프로 원년 21경기에 선발등판하여 ERA 1.96이란 기록을 남겼으나 2010년 류현진(1.82)에 의해[4] 갱신됐다. 1987년1986년보다 훨씬 적은 이닝(약 90이닝)을 소화해내면서, 최고의 방어율(2.41)을 기록했다(전성기는 선발로 15승을 기록한 1982년에 가깝다). 그러나, 1988년 노쇠화 때문인지 3점대 후반의 방어율과 7세이브를 기록했다. 1989년 19세이브를 끝으로 마무리 보직을 김상엽에게 물려 주고, 마운드를 떠났다. 통산 기록은 56승 49패 100세이브 방어율 3.06이고, 100세이브 달성 당시에는 자신의 별명답게 '명예 소방수'가 되었으며 1982년 8월 7일 해태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하여 잠실구장 개장 후 2호 승리투수 겸 1호 완투-완봉승 투수가 됐고[5] 삼성은 다음 날 경기에서도 승리하여 잠실구장 최초 연승 팀이[6] 됐다.

야구선수 은퇴 후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전업했는데 1995년 시즌 후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면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연수를 떠났다가[7] 다음 해인 1996년 7월 14일 귀국했으며 그 해 8월 초 잔류군 투수코치를 맡았다가 같은 달 12일부터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됐고[8] 1997년 시즌 뒤 백인천 감독 후임 물망에 올랐으나 소위 '백인천 파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등[9]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좌절됐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영남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2003년에 자신의 후임이었던 김상엽투수코치로 맞이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로 활동했다가 2013년 롯데 자이언츠의 수석코치로 영입되었다. 2013 시즌 후 권두조와 보직을 맞바꾸어 2군 감독직에 올랐으나, 부임한 지 1주일 만에 갑작스럽게 경질 통보를 받았다.[10]

의의

  • KBO 리그 사상 첫 전업 마무리 투수로서, 1985년 삼성 라이온즈 통합 우승과 함께, 마무리 보직의 중요성을 일깨워 줬다.
  • 초창기 혹사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고, 분업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출신 학교

통산 기록





































4














W
H
I
P
1982 삼성 29 15 5 .750 2.37 32 21 6 3 2 0 178.2 139 18 52 0 72 7 1 1 57 47 710 1.07
1983 30 6 10 .375 3.20 32 15 5 0 7 0 135.0 113 7 48 2 49 6 1 2 58 48 556 1.19
1984 31 6 8 .429 3.28 29 18 2 0 2 0 137.1 124 8 57 3 52 4 1 0 53 50 574 1.32
1985 32 6 6 .500 3.50 54 13 0 0 26 0 174.2 170 14 68 4 81 3 1 4 75 68 746 1.36
1986 33 7 7 .500 2.77 38 10 3 1 19 0 146.1 121 12 53 3 74 2 0 6 47 45 593 1.19
1987 34 5 3 .625 2.41 32 2 0 0 18 0 89.2 74 7 30 1 28 0 0 1 27 24 356 1.16
1988 35 7 5 .583 3.73 29 4 1 1 7 0 72.1 61 5 40 6 24 1 0 1 32 30 308 1.40
1989 36 4 5 .444 3.63 42 3 1 0 19 0 86.2 83 6 39 1 41 1 2 0 39 35 366 1.41
KBO 통산 : 8년 56 49 .533 3.06 288 86 18 5 100 0 1020.2 885 77 387 20 421 24 6 15 388 347 4209 1.25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각주

  1.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2년 10월 6일자 경향신문 보도 인용
  2. 마무리 투수의 탄생, 원조 소방수 권영호 《오마이뉴스》, 2007년 1월 26일 작성
  3. 김지석 (2002년 12월 13일). “땀.눈물 그리고 우승 되돌아본 21년-(15)아쉬운 84년 KS”. 매일신문. 2020년 4월 9일에 확인함. 
  4. 김진성 (2024년 7월 4일). “2001년 손민한은 했는데 2010년 류현진은 못했다…2024년 이 투수들의 도전, 어쩌면 ‘강제 종료’”. 마이데일리. 2024년 7월 4일에 확인함. 
  5. “青龍(청룡),홈런날린 OB에 逆轉勝(역전승) 프로야구”. 조선일보. 1982년 8월 8일. 2024년 4월 13일에 확인함. 
  6. “三星(삼성),해 태 꺾 어 先頭(선두)”. 조선일보. 1982년 8월 10일. 2024년 4월 13일에 확인함. 
  7. “한국과 일본의 야구 아직도 수준차이나”. 매일신문. 1996년 7월 17일. 2020년 6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6월 7일에 확인함. 
  8. “권영호코치 1군투수코치에 전격 선임”. 매일신문. 1996년 8월 12일. 2020년 6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6월 7일에 확인함. 
  9. 허정훈 (1997년 9월 19일). “삼성지휘봉 어디로…”. 매일신문. 2020년 2월 25일에 확인함. 
  10. 왜 롯데는 권영호 2군 감독을 1주일 만에 경질했을까 - 스포츠조선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