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거는 미국 역사상 민주당이나 공화당(휘그당) 양당이 아닌 제3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를 받은 선거(2위)로 꼽힌다. 동시에 사회당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유진 뎁스, 6%)를 얻은 선거이기도 하다.
후보선출
공화당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지지로 대통령이 된 태프트 대통령은, 집권 후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정책과는 정반대로 환경을 파괴하고 대기업들을 돕는 정책을 폈고, 이는 진보파의 반발을 사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불러온다.
태프트 대통령은 대의원의 1/4을 자신을 지지하는 남부 쪽으로 채웠는데, 남북전쟁 이후 압도적으로 민주당만을 지지해 공화당 세가 약하던 남부에 1/4나 되는 대의원을 배정하는 것에 대해 진보파는 반발했고,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자격증명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무시당했고, 결국 갈등 끝에 6월 12일,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경선 사퇴를 선언하고, 태프트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었다
진보당
태프트 행정부의 임기 내내 주류인 보수파와 갈등을 겪던 진보파는 결국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탈당, 진보당을 창당하고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한다
민주당
1912년 6월 25일부터 7월 2일까지 치러졌던 민주당 전당대회는 46차에 걸친 투표 끝에 우드로 윌슨 뉴저지주지사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