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4년 대통령 선거에서, 앤드류 잭슨은 직접선거와 선거인단 투표에서 모두 1위를 하지만, 후보난립으로 과반을 넘지 못해 하원에서 재투표가 이뤄졌고, 헨리 클레이와 야합한 존 퀸시 애덤스가 당선된다. 이후 잭슨이 결과에 승복하며 애덤스를 돕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애덤스 대통령은 클레이를 국무장관에 임명했고, 이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 여파는 계속 이어져, 1826년 중간선거에서 잭슨이 이끄는 민주공화당은 과반을 차지한다.
후보선출
민주당
애덤스 대통령 취임과 클레이 국무장관 임명파동 직후인 1825년, 민주공화당은 당원대회를 열고 앤드류 잭슨 전 상원의원과 존 C. 컬훈부통령을 각각 차기 대통령,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다
국민공화당
민주공화당이 앤드류 잭슨을 대선후보로 지명하며 민주당으로 변모하자, 애덤스파는 국민공화당을 창당하고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민주당에 간 부통령 대신 리차드 러시외무장관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다
선거
선거는 네거티브전으로 치달았다
잭슨 후보는 아내인 레이첼 잭슨과의 재혼과정에서, 법적으로 이혼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던 것과, 서부개척과정에서의 인디언 학살 등이 공격 대상이 되었다.
애덤스 대통령 역시, 러시아 대사 시절, 차르에게 미국인 소녀를 넘겨줬던 사실부터, 공금을 이용해 도박기계를 샀던 것이 공격대상이 되었다.(이는 체스판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