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사단법인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일본어: 日本プロ野球名球会, 영어: Golden Players Club(GPC))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했던 전직 선수에 의한 법인격을 가진 단체이다. 통칭으로는 명구회(名球会 메이큐카이[*]) 라고 부른다.
1978년 7월 24일에 가네다 마사이치 중심으로 설립됐고, 쇼와 태생의 선수 또는 이전 선수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쇼와 명구회’(昭和名球会)라고도 불리고 있지만[주 1] 현재는 기록과 업적으로 가입 자격 요건을 채우면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도 가입할 수 있게 됐다.
2009년, 명구회 조직의 기본 방향을 둘러싸고 창설자인 가네다와 일부 회원들이 대립하여 가네다는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후임으로 오 사다하루가 취임했고 사무소도 도쿄도 주오구교바시의 빌딩으로 이전했다.[주 2]
2010년 10월 15일에 일반 사단법인으로서 현재의 조직인 ‘일반 사단법인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一般社団法人日本プロ野球名球会)를 설립(이사장은 오 사다하루, 부이사장은 시바타 이사오, 이사는 스즈키 게이시, 나가시마 시게오, 히가시오 오사무, 야마다 히사시, 야마모토 고지)했다. 하지만 가네다는 이에 참여하지 않고 탈퇴했다. 주식회사로서의 법인은 2011년 2월 12일 주주총회에서 해체됐다.[2]
1978년 설립 이래 ‘사회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환원하고 프로 야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한다’라는 목적을 갖고 ‘야구 진흥’과 ‘사회 공헌’이라는 두 가지 분야에 있어 지속적인 활동과 더불어 사회 정세에 대응하는 새로운 활동에 적극적으로 매진하고 있다.
야구 진흥
‘프로 야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를 목적으로 하는 분야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게 하며, 스스로 경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고, 프로 야구 팬의 확대와 프로 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동기 부여에 힘이 되게끔 회원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소년 야구 지도와 지원에 힘을 쓰고 있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 지자체, 교육위원회, 소년 야구팀, 기업 등에서의 의뢰에 따르고 우선 야구에 흥미를 갖게하기 위해 야구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도록 체험하는 ‘명구회 베이스볼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거기에선 회원이 체험 지도하는 투구, 타격, 수비에 대해 진지하게 마주하는 어린이와 더불어 응원하러 온 형제, 부모, 조부모가 각자 시대의 히어로와의 만남을 통해 즐기게끔 만들고 있다. 그리고 야구를 잘하고 싶어하는 어린이에게는 회원이 직접 지도하는 ‘명구회 야구 교실’도 실시하고 있다. 여기서 투구, 타격, 수비 전문가가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를 듣고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면서 지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화 되면서 해외에서도 야구를 즐기며 보급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뢰도 있어 현재 아시아 여러 나라(대한민국, 중화민국, 필리핀)의 회원들을 위해 현지의 어린이들을 지도하고 지원 행사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명구회배’라는 이름이 들어간 소년야구대회의 개최 지원과 야구 용품이 부족한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용품을 기증하고 있으며 또한 그라운드 외에서도 어린이 학생, 소년 야구팀, 소년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회원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강연하는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무라야마 미노루가 경영하던 ‘리젠트 파이스트’(リージェント・ファーイースト)와 제휴하여 ‘gpc’라는 브랜드의 야구 용품을 선보였고, 프로 야구에서도 다부치 고이치 등이 사용했다. 이후에도 데상트가 명구회 유니폼 지급 등을 지원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는 가슴에 페가수스 로고가 새겨져 있었고 흰색 바탕의 ‘타테지마 유니폼’(タテジマユニフォーム)을 야구 교실에서 착용했다.
사회 공헌
‘사회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의 환원’을 목적으로 하는 분야에서는 모두가 안전하게 안심하고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보다 좋은 사회만들기 공헌을 목표로 사회적 약자들의 지원 활동을 중심으로 하면서 그 폭을 점차 확대하였다.
설립 당초부터 명구회 회원들의 인지도를 활용하여 자선 이벤트를 열어 지금까지 모은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 잘 알려진 이벤트는 연말 TV에서도 방송된 ‘명구회 자선 골프 대회’가 있으며 거기서 모인 금액은 현지의 사회사업단이나 사회 단체에 기부되었다. 최근에는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이재민 지원을 위한 토크쇼나 강연회를 개최해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자선 이벤트를 하고 있으며 점자 도서관이나 일본적십자사 등에 기부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직접적인 지원 활동으로서 2012년 5월부터 동일본 대지진의 이재민이 거주하고 있는 임시 주택을 회원들이 방문해 교류를 위한 ‘마음의 치유’ 활동을 유엔의 벗 Asia-Pacific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2년 7월에는 명구회가 대한민국과의 국제 친선 차원에서 한국프로야구 OB단체인 일구회와 공동으로 청각장애를 앓는 소년들에게 야구 클리닉과 7월 20일 잠실야구장에서 한일 프로 야구 레전드매치를 개최해 대한민국의 야구 팬들을 즐겁게 했다. 또한 기념 사업이나 연수회의 바람대로 지역주민, 자위대원, 기업인들, 선수, 감독으로서 경험한 기록이나 승부, 지휘봉에 얽혀있는 이야기 등 많은 강연을 열어 교훈을 전하고 있다.
가입 자격
명구회는 이하의 자격 요건을 채운 다음 가입 의사를 표시하면 가입할 수 있다. 참가는 어디까지나 임의로 하며, 가입할지 어떨지는 본인의 의사에 의한다. 국적은 물론[주 3] 가입 자격을 충족시켜 참가 자격을 채우면 외국인 선수나 전직 선수도 가입할 수 있다. KBO 리그와 대만 프로 야구, 미일 독립 리그 등 NPB·MLB 이외의 기록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 NPB·MLB라도 춘계 비공식 경기(시범 경기)나 포스트시즌 기록은 적산 대상에서 제외된다.
2019년부터는 기록에 있어서 위의 가입 자격에는 충족되지 않았지만 이사회에서 추천을 받은 선수에 대해 회원의 4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특례 기준으로 회원이 될 수 있어 2022년 12월 9일에 우에하라 고지와 후지카와 규지의 특례 가입이 허용됐다.
가입 자격의 변천
창립 초기의 가입 자격
1978년 창설 초기의 회원 자격은 다음과 같았다. ※외국인 선수들도 이 조건을 충족시켜 가입 의사를 표시하면 가입 허용을 당시부터 공표했다.
NPB 선수 또는 전직 선수
쇼와 시대 태생
NPB에서 다음 중 하나를 달성
통산 200승 이상
통산 2000안타 이상
2003년 12월, 투수의 분업화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는 일본인 선수가 증가하는 것을 두고 통산 250세이브 이상에서도 가입을 인정하는 것과 MLB에 이적함으로써 NPB에서의 기록을 늘릴 수 없게 되는 일본인 선수를 구제하기 위한 미일 통산(MLB와 NPB의 성적을 합산)으로 한다는 가입 자격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2012년, MLB만으로 기록을 달성하거나 일본에 진출하여 NPB에서 미일 통산 2000안타 이상을 달성하는 선수[주 5]의 취급이 애매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명구회 가입 자격에 있어서는 미일 통산과 일미 통산을 구별한다’는 것이 정해지면서 일본 프로 야구에서의 기록을 시작점으로 한다라는 문언이 가입 자격으로 추가됐다. 또한 동시에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프로 야구 선수가 탄생함에 따라, 아울러 생년에 의한 제한도 쇼와 시대 이후 태생으로 개정됐다.
2019년 12월 10일, 로테이션 제도 확립 등의 요인으로 타자에 비해 ‘통산 200승’ 달성이 어려운 상황에서 가입 자격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5][6][7] 선수의 가입을 인정하는 ‘특례 범위’를 신설하는 것으로 결의됐다. 향후 이사회에서 추천을 받은 선수가 총회의 자문을 받아 회원의 4분의 3 이상의 승인을 얻으면 가입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8][9]
또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가입 자격이 없더라도 이사회에서 추천받은 선수에 대해 회원 4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얻게되면 특례 범위로 가입할 수 있도록 돼있으며, 2022년 12월 9일 총회에서 우에하라 고지와 후지카와 규지의 특례 가입자로 공식 발표했다.[10]
회원
새롭게 가입한 선수에 대해서는 선배 회원으로부터 명구회 블레이저 코트를 입혀주는 형식의 ‘명구회 블레이저 코트 증정식’이 이뤄지고 있다. 이전에는 기록 달성 시에 증정식이 거행됐지만, 후에 연맹이 주최하는 시상식에서도 이뤄지게 됐다.
회원 구성과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으며 50음순으로 나열돼 있다. 소속 구단의 굵은 글씨는 해당 구단에 소속될 당시에 달성했다는 것을 뜻한다.
투수 17명, 타자 48명, 명예회원 14명이며 데이터는 모두 2023년 시즌 종료 시점이다.
가네다 마사이치와 야자와 겐이치는 2010년에 일반 사단법인으로 전환될 당시에 참여하지 않고 얼마 후 탈퇴자로 취급했다. 호리우치 쓰네오는 일부 회원과의 갈등 끝에 자의적으로 탈퇴했다. 에노모토 기하치는 초기 회원이었지만 그 후 명구회 활동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적 회원으로 취급받았다.
에나쓰 유타카는 자신과 관련된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한때는 탈퇴자로 취급됐지만 현재는 회원으로 복귀했다. 또한 노무라 가쓰야도 야쿠르트 감독 취임 이후 거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 2000년대 후반에는 한때 회원 명단에서 이름이 지워졌지만 후에 복귀했고 사망 후에도 명예 회원으로 취급되고 있다.
오치아이 히로미쓰의 경우 2000안타를 달성할 당시에 가입을 고사했다. 알폰소 소리아노는 2013년에 미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여 명구회 가입 조건에서도 기록을 달성하여 가입 자격을 얻었다. 또한 소리아노 본인도 명구회 가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지만[13] 일본 프로 야구에서는 통산 2안타에 그쳤고 그 후 메이저 리그에서 1998안타를 기록했다는 특수한 기록이었으므로 가입을 인정할지 여부가 2013년 12월 총회에서 논의될 것이라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14] 하지만 그 후 이렇다할 소식이 전혀없어 무산됐고 현 시점에서의 가입은 인정되지 않았다.
2006년에 통산 1904안타를 기록하여 현역에서 은퇴했던 마쓰나가 히로미가 전직 프로 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프로 야구 마스터스 리그에서 96안타를 기록하여 현역 시절과 합산한 안타가 2000개가 됐다. 당시 명구회·마스터스 리그 쌍방의 규정으로 마스터스 리그에서의 기록이 일본 프로 야구 통산 기록과 합산돼 가입 자격을 얻으면 ‘명예 회원’으로서 정회원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다고 규정돼 있었기 때문에 마쓰나가는 첫 명예 회원으로서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2009년에 마스터스 리그 중단이나 명구회 개편 등에 의해 이 규정은 흐지부지 되면서 현재 명구회 공식 홈페이지의 명예회원란에는 사망한 회원들로만 기재돼 있고, 마쓰나가의 이름은 기재돼 있지 않다.[15]
각주
주해
↑발족시부터 가입 자격에 ‘쇼와 태생’을 기점으로 한 생년의 조건이 있기 때문에 쇼와 시대 이전에 태어난(메이지·다이쇼 태생) 2000안타, 200승 달성자에게는 가입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해당 인물로는 가와카미 데쓰하루(다이쇼 9년생(1920년), 통산 2351안타), 스기시타 시게루(다이쇼 14년생(1925년), 통산 215승), 나카오 히로시(다이쇼 8년생(1919년), 통산 209승), 노구치 지로(다이쇼 9년생, 통산 237승), 빅토르 스타루힌(다이쇼 5년생(1916년), 통산 303승), 후지모토 히데오(다이쇼 7년생(1918년), 통산 200승), 벳쇼 다케히코(다이쇼 11년생(1922년), 통산 310승), 와카바야시 다다시(메이지 41년생(1908년), 통산 237승) 등이 있다.[1]
↑《슈칸 포스트》 2009년 12월 4일자에 게재된 기사(p.34-38)에서는 11월 12일에 구 사무소로부터의 이전 작업이 시작된 것과 11월 15일에 회원이나 관계자에게 이전 통지가 전달된 사실을 알렸다.
↑명구회 창설 당시 회원으로 오 사다하루나 장훈 등 일본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NPB 구단에 입단하기 이전의 MLB 성적을 합산하는 것은 ‘일미 통산’이 아닌 편의상 ‘미일 통산’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알렉스 라미레스는 2012년에 미일 통산 2000안타를 기록했으나 가입 자격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2013년 NPB에서만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해 처음으로 가입이 인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