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동원군(아랍어: الحشد الشعبي 알하시드 알샤비[*]) 또는 인민동원부대(아랍어: الحشد الوَطنيّ 알하시드 알와타니[*])는 이라크 정부가 후원하는 40개의 무장 단체로 이루어진 통솔 기구로 대부분이 시아파 무장단체이지만 수니파, 크리스트교, 야지디 무장단체도 존재한다.[7] 인민동원군은 ISIL에 맞서 창설된 부대이다. 원래 부대는 이라크 내정부의 인민동원위원회라는 이름의 무장단체를 바탕으로 2014년 6월 창설되었다. 이라크 정규 무장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민동원군 휘하의 무장단체들은 무장단체라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8]
명칭
공식적인 원어 명칭에 따르면, 아랍어 الشعبي (알샤비)는 '인민의', 혹은 '인기있는', '대중적인'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인민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랍어 الحشد (알하사드)는 "기동/동원"으로 해석되는데, 동원 과정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이미 동원된 인력의 집단으로 해석하는 편이 좋다. 다른 문맥에서 알 하사드는 군중, 떼, 집합, 무리, 인파 등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인민동원군은 6월 13일 알리 알시스타니의 성전 관련 파타를 통해 6월 15일 이라크 정부에 의해 창립되었다.[9] 파타는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 도시를 지켜주고 ISIL에 맞서 반격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2014년 6월 10일 모술 함락에 뒤이어 나온 발언이었다.[10][11] 부대는 이란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단체들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수니파 부족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12] 부대는 국가의 보안 체계 및 법적 틀, 내정부의 현실에 맞춰 이라크 정부의 안보 우산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련의 사건들로 몇몇 부대는 독자적인 노선을 취하며 독립적으로 작전을 시행했다.[13] 몇몇 자료에 따르면 인민동원군은 전장에서 서로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은 IS의 우월성을 게릴라 전술의 단계로 보거나 심리전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14]
구성 및 조직
인민동원군의 병력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없지만, 차이가 있는 추정치들은 많이 발표되었다. 티그리트 주변의 군인은 약 20,000명의 전투 부대원이 있을 것으로 보며, 전체적인 추산은 20만 명에서 50만 명 정도로 추산한 자료가 있으며,[15] 30만 명에서 45만 명으로 추산하는 자료도 있다.[16] 후자는 수니파 대원 4만 명을 포함한다.[17] 2015년 초기에 나온 수치는 1,000명에서 3,000명 정도가 수니파 대원이라 추산했다.[18][19] 2015년 3월 초, 인민동원군은 야지디 마을인 신갈에서 그들의 거점을 확장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야지디 주민들을 징집하고 봉급을 주었다.[20][21]
인민동원군은 의용군과 이미 존재하는 무장 단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이라크 내정부 인민동원군 부서의 지휘하에 공식적인 통솔 기구 밑에서 뭉치게 되었다.[22][23] 이러한 무장단체들 중에는 마흐디 민병대로 알려진 평화 연대를 비롯하여 카타이브 헤즈볼라, 카타이브 사이드 알슈하다, 알이맘 알리 여단, 아사이브 알 알하크, 그리고 바드르 조직 등이 있다.[24] 무장단체들은 수니파 및 투르크멘 무장단체들을 위해 터키에서 온 군사 고문관의 훈련과 지원을 받고 있으며,[25]이란과 헤즈볼라의 지원도 받고 있다.[26][27] 이란에서 온 지휘관 중에는 유명한 쿠드스군 사령관인 가셈 솔레이마니도 포함되어 있다.[28] 인민동원군은 안바르 주에서 대령 주마 알주말리의 지휘를 받는 여단을 배치하기도 했다.[29] 인민동원군은 독자적인 군 정보부와 행정 시스템,[15] 사기를 고취시키고 선전방송과 전투 상황을 보고하는 언론 전투단,[30] 그리고 법률 시행부도 있다고 전해진다.[31]
이라크의 총리 하이다르 압바디는 2015년 4월 7일 인민동원군을 총리의 공식 직속 휘하부대로 두어야 한다고 지시했으며,[32] 더욱 공식적인 지휘를 무장단체들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명령했다.[33] 이라크 정부 내에서 인민동원위원회의 위원장은 파리흐 파이다흐로 국가 안보 고문관이기도 했다.[34] 인민동원군은 자말 자파르 모하메드, 또는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즈로 알려진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수장에게 전장 지휘를 맡기고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35][36] 그러나 사령관 직은 이전 지도자들이 순환하며 맡게 되어 있다.[37] 친사우디 기관지인 런던 소재의 아슈라크 알아우사트와 이라크 측의 자료에 따르면 서로 다른 무장단체들이 그들의 사령관 직에 의존하고 있으며 함께 싸우거나[15] 이라크 육군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고 밝혔다.[38][39]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즈 이외에도 인민동원군을 지휘하는 사람들은 아사이브 알 알하크의 사령관 콰이즈 알카자리, 바드르 조직의 수장 하이디 알아미리 등이 있다.[40]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이러한 조직의 자치는 이라크 총리 하이다르 압바디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41]
수니파 대원
인민동원군의 초창기에는 시아파 부대가 거의 배타적인데다가 수니파들이 거의 무시당했는데, 이는 수니파가 1,000명에서 3,000명의 병력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19] 2016년 1월, 하이다르 압바디 총리는 40,000명의 수니파 대원을 인민동원군로 임명하는 것을 승인했다. 알모니터에 따르면 그의 행동은 이 부대가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결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수니파 대원들은 압바디의 결정 이전부터 이 부대에 자원했다. 수니파 대원을 인민동원군에 참여시키는 것은 미래의 국가 방위군의 핵심이 되는 단계를 설립한 것이라 볼 수 있다.[17]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6년 4월 말부터 하쉬드가 16,000명의 수니파 대원들을 보유한 거으로 보인다고 전했다.[42] 수니파 아랍 부족들이 알하사드 알샤비에 참여한 것은 2015년 모집 때로 이 때 그들은 총리였던 누리 알말리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43]
시아파 부대원
수니파 신문에 따르면 인민동원군에는 3개의 시아파 구성 부대가 있다. 첫번째는 시스타니의 파타에 따라 창설된 집단으로 정치적 뿌리나 야망은 가지고 있지 않다. 2번째 집단은 정당에 의해 창립되었거나 이러한 정당들의 군사 조직이었던 집단들이다. 나머지 집단은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과 전투를 벌였고, 수년 간 이라크에 있었던 부대로, 시리아 내전에도 참전한 부대이다.[22] 시아파 인민동원군 장교에 따르면 종교 단체들과 시아파 종교 학자들이 모집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모집 작전이 성공적이었다고 밝혔다.[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