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시, 오키나와시, 우루마시에 뒤를 이어 오키나와 현 제4의 규모를 가지는 시이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출생률을 자랑하고 나하 시와 인접하기 때문에 인구증가가 현저하며 인구밀도는 5,694명/km2(2007년 3월 31일 기준)로 현내에서는 나하 시에 이어 2번째로 높다. 현내에서도 유수한 상업, 공업이 활발한 시이다.
12세기부터 14세기의 약 220년간 우라소에성을 중심으로 류큐 왕국의 수도로서 번창했다. 오키나와 전투 때에는 우라소에부터 기노완에 걸쳐 일본군 중앙 사령부인 슈리성을 놓고 공방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격전지가 되었다. 종전 후에 서해안 지구는 미군 기지가 되었다.
지리
오키나와섬의 남쪽에 위치하고 서쪽은 동중국해에 접하는 해안이며, 남쪽은 나하시, 북쪽은 기노완시, 동쪽은 니시하라정과 접하고 있다. 시역(월경지 포함)은 동서 8.4km, 남북 4.6km이고 북쪽을 정점으로 남서쪽과 남동쪽으로 펼쳐진 부채꼴 모양이다. 서쪽의 동중국해와 접하고 있는 곳은 미국 해병대의 병참기지 "마키미나토 보급 지구(Camp Kinser)"가 차지하고 있다. 또 우라소에 부두·오키나와현 중앙 도매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난세 지구는 월경지이다.
역사
우라소에의 역사는 길어서 13세기 경에 등장하는 에이소 왕조의 중심지로서 번창했고 14세기 말에 삿토 왕조가 쇼하시 왕에 의해서 멸해질 때까지 추잔 왕국의 수도였다. 태평양 전쟁중인 1944년에 일본 육군 오키나와미나미 비행장이 건설되었지만 미군의 공격과 상륙을 맞아 비행기가 한 번도 날아오르지 못하고 방치된 채로 오키나와 전투가 끝났다. 그 후 미군이 이 비행장을 점거했고 마키미나토 보급 기지를 건설해 현재까지도 기지로서 사용하고 있다.
종전 후에 나하시의 베드타운이 되어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1970년에 우라소에 촌에서 우라소에 시가 되었고 1998년 1월에는 인구가 10만 명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