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학파의 철학적 입장은 논리 실증주의로 불린다.[1] 이는 에른스트 마흐, 다비트 힐베르트, 프랑스 컨벤셔널리즘, 고틀로프 프레게,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빈 학파는 다원주의자였으며, 계몽주의의 사상에 충실하였다. 이들의 목표는 난해한 언어로 되어 있던 철학을 현대적 논리학의 도움으로 과학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2] 모임의 주요 주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논리학과 수학, 현대적 논리학에 의한 경험론의 현대화, 의미에 대한 경험론적인 기준을 위한 연구,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통일과학(unity of science) 안에서의 과학의 통일이었다.
빈 학파는 다양한 서적 출판과 쾨니히스베르크, 프라하, 파리, 코펜하겐, 영국 케임브리지, 미국 케임브리지에서의 국제 콘퍼런스 개최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중적인 활동은 에른스트 마흐 학회라는 이름으로 하였는데, 빈 학파의 일원은 에른스트 마흐 학회를 통하여 빈에서 국가적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의 맥락에서 그들의 사상이 대중화되는 것을 추구하였다.
오스트로파시즘(Austrofascism) 시대 동안과, 나치 독일에 의한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에 대부분의 일원이 해외로 망명하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936년 슐리크가 과거 제자에 의해 살해당한 후 오스트리아에서의 빈 학파는 종말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