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靑州)는 동남부를 제외한 현재의 산둥성 일대에 존재한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며, 구주(九州) 중 한 곳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이다. 전한 무제시기 설치된 13주 중 하나로 시작되어 청나라까지 이어졌다. 서진이전까지 중심지는 임치(臨淄, 現 쯔보시린쯔구)에 두었다.
오호 십육국 시대의 16개 국가중 후조, 전연, 전진. 후연, 남연이 청주를 지배했다. 이중 청주일대만을 통치했던 남연은 청주를 분리하여 유주, 병주, 유주, 서주, 연주, 청주를 재설치했는데, 남연대 청주는 광고에서 동래로 옮겨졌다. 남연의 청주는 410년(진 안제의희 6년) 동진이 남연을 멸망시키면서 폐지되었다.[2]
남조
동진, 유송
동진초기 광릉군에 교치되었다가 410년 동진이 남연을 정복하면서 본래의 청주를 수복하게 되었다. 청주를 수복한 유송은 주를 분리하여 남청주, 북청주의 2개 주를 두었다가 남청주를 북청주에 통폐합시켜 청주를 다시 두었다. 남청주의 경우 광고성, 북청주의 경우 동양성(東陽城, 광고성과 인접함), 청주의 경우 초창기 임치, 455년(유송 효무제효건 2년)에 역성(歷城, 現 산둥성 지난시)으로 옮겨졌다가 464년(유송 효무제 대명 8년) 동양성으로 옮겨졌다. 470년(유송 명제태시 6년) 북위의 공격으로 회하이북 전역의 땅을 상실하자 울주(鬱洲, 現 장쑤성 롄윈강시에 있던 섬)로 옮겨졌다. 북위에게 회수 이북을 상실하기 전까지 청주는 9군 40,504호 402,729명을 거느렸다.[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