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린시(중국조선어: 길림시, 중국어: 吉林, 병음: Jílín)는 중화인민공화국지린성의 도시이다. 면적은 27,100 km2, 인구는 약 4,116,000 명이다. 쑹화강 인근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지린(吉林)은 동명의 성(省)과 시(市)가 있다. 지린성은 중국 성급 행정구역의 하나로 둥베이삼성 중의 헤이룽장성과 랴오닝성 사이에 있는 성이고 지린시는 지린성에서 두 번째로 큰 시이다.
역사
시명은 만주어로 ‘강가의 마을’을 의미하는 기린우라(吉林烏拉, 만주어: ᡤᡳᡵᡳᠨ ᡠᠯᠠ)에서 유래했다. 지린성 명칭의 유래가 된 도시이다.
부여시기에는 지금의 지린시 시가지 일대에 관지고성(官地古城), 동단산성, 룽탄 구 용담산의 용담산성, 남성자성등의 도성을 쌓고 지린시를 수도로 삼았다. 하지만 물길의 침공으로 지금의 랴오닝성시펑 현일대로 이주했고 그 자리엔 물길과 이후에 등장하는 말갈, 그중에서도 속말말갈이 거주하게 되었다.
6세기 고구려가 말갈제부족중 속말말갈을 직접지배하면서 고구려의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발해때는 속주(涑州)로 개편되었다.
명나라 때는 여진 안부가 이 땅을 지배하여, 안국으로 칭해지고 있었다. 1613년 이후는 누르하치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후금의 영지가 되었다. 1671년 닝구타부도총이 지린성을 건설하여, 1727년에는 융지 주(永吉州)가 설치되어 1747년에 지린청이라고 개칭되었고, 1882년 지린부로 승격했다.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1913년에 지린부는 지린 현으로 격하되었고, 1929년에는 융지 현으로 개칭되었다. 1931년의 만주사변으로 관동군이 점령하였고,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지린성 관공서가 설치되었다. 만주국 붕괴 후는 국공내전의 전장이 되었으며, 1948년3월 9일에 중국공산당의 지배하에 들어가 지린성 인민정부가 옌지시에서 지린으로 이전하여, 3월 23일에 지린시 인민 정부가 성립되었다.
1954년에 지린성 인민정부는 창춘으로 이전되었다. 문화대혁명 때인 1968년에는 지린시 혁명 위원회가 통치를 했지만, 1980년에 인민 정부가 부활했다.
지리
지린시는 지린성 중앙부에 위치하며, 쑹화강의 연안에 있다. 쑹화 강은 북쪽 흘러 아무르강과 합류해 동해에 연결되는 수로이기 때문에 예부터 조선업이 번창했다. 동쪽은 옌볜 조선족 자치주, 서쪽은 창춘시, 쓰핑시, 북쪽은 헤이룽장성, 남쪽은 바이산시, 퉁화시와 접한다. 기온은 1월이 가장 춥고, 영하 8℃에서 영하 20℃까지 간다. 7월이 여름 성수기로 평균 21℃에서 23℃에 이르며, 36℃ 정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지린시의 주요 여객 철도역으로 지린 역이 운영되고 있다. 지린 역은 지린시 철도내의 유일한 여객터미널역으로 화물운송 업무를 처리하지 않는다. 이 역을 지나는 철도는 창투 철로, 선지 철로, 지수 철로, 창훈 성제철로가 있다. 철도 승차권은 지린 은행 지린지점 및 시내의 각 철도 매표 지점에서 판매된다.
도로 교통
시내 도로 총연장은 14,615 km에 달하며 (2007년)[5], 국도 2개, 성도 6개, 현도 28개가 있다.
창지 고속공로는 1995년 5월 18일에 착공하여 1997년 9월 9일에 개통하였으며, 공사는 6차선에 따라 노반을 설치하였고, 초기에는 4차선을 부설하였으며, 장춘~룽자 국제공항 구간의 6차선 전환 공사는 2009년, 룽자~지린 구간의 6차선 전환은 2017년 9월 25일에 2년간 공사를 하였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