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군(일본어: 関東軍 간토군[*], 영어: Kwantung Army; KA)은 일본 제국이 세운 괴뢰 정권이었던 만주국에 상주(常駐)한 일본 제국 육군소속 부대이다. 용어 자체는 산해관(山海關)의 동쪽에 주둔한 일본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할
일본 제국은 중국을 침공하는 전진기지로서 만주를 활용하고 있어서 관동군은 그 주변지에서 일본이 지배하는 지역을 확대하고 중국을 침략하는 선봉으로서 다양한 음모 공작과 작전을 수행하였다.
1928년에는 참모 고모토 다이사쿠(河本大作)가 장쭤린(張作霖)을 폭사시켰고, 1931년에는 참모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郞)와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이 만주사변을 획책해 1932년 일본 제국의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세웠다. 1932년에 관동군 사령관이 주만(駐滿)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를 겸하고 중국 동북 지방을 실질로 지배하기 시작한 이 기간에 관동군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와 함께 식민지를 공고히 지배하고 일본의 이익을 위해 철도 사업을 했다. 만주국의 주요한 정책 입안과 집행은 관동군 사령관에게 재가(裁可)받아야 했다.
관동군은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실질로 통치하는 기구였고 관동군 사령관이 만주국의 실권자였다.[1]
군비
소련을 대상으로 한 전쟁 준비와 중국 침공을 준비하느라고 관동군의 병력은 차츰 증강되었다. 1933년에는 규모가 10만 명이었는데, 관동군은 1938년 장고봉 사건과 1939년 노몬한 사건으로 소련에 도발했다가 패했다.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후에는 독일을 도와 소련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병력을 크게 늘려 1941년 관동군특별대연습(關東軍特別大演習) 때는 약 100만 명이 되었다.
패망
그러나 1941년에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1943년 가을 이후에는 전력을 동남아시아를 위시한 남방 전선으로 이동하게 되어 만주에는 형식적 전력만 남았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후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계산으로 소련과 협력하여 신속하게 점령지를 소련군에게 넘겨주어 소련군이 미국보다 먼저 한반도에 진군하도록 협조한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후인 1945년 8월 19일에 관동군 사령관도 무조건 항복했다.
지휘부
사령관
참모장
편성
- 직속부대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