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동단에서 만날 최초 관문이라는 의미의 별칭인 "천하제일관"으로 불리는 산해관을 통과하여 중원으로 향로(向路)를 입관한다고 하며, 그 외부에 있는 동북 지역을 ‘관외’나 ‘관동’이라고 칭해서 명칭인 관동주와 관동군도, 이 관을 기준으로 그 동 측을 관동이라고 명명했던 실정(實情)에서 유래한다.
역사
산해관 동쪽은 고조선의 영토였다 연나라에게 빼앗기고 한(漢) 때는 “임유관”으로 칭했고 수(隋) 때 문제(文帝)의 오만한 국서에 반발 598년고구려영양왕 때 장군 강이식이 선제공격했던 임유관 전투의 배경지이다.
명 때는 산해위를 설치하면서 산해관으로 불렀다. 명 말 누르하치, 홍타이지에 의한 만주족 침입을 몇 번이나 잘 방어한 수장 오삼계가 청에 항복할 때까지 난공불락 요새였다. 청 성립 후 공식 이름을 임유현으로 바뀌었지만, 그 후에도 산해관으로 부르기도했다.
1931년유조호 사건(만주사변 발발), 1932년의 만주국 건국과 계속되는 전화의 확대로 1933년 1월에 일본군이 산해관을 점령하면서, 북경 공략 동부 루트가 열리면서 2월에는 열하 작전을 진행하여 열하성을 장악하고 만주국에 병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