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플라타 출신인 스코페지는 아르헨티나의 에스투디안테스 라 플라타에서 축구를 시작해 "교사단"으로 회자되는 전설의 공격진으로 이름을 날렸다. 1931년, 그는 소속 구단에서 31골을 기록했지만, 33골을 넣은 동료 알베르토 소사야에게 득점왕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1933년, 스코페지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에 입단했다. 당시 그는 속인주의에 따라 이탈리아 시민권을 취득하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한 적도 있다. 1936년, 스코페지는 아르헨티나로 복귀해 라싱 클루브 아베야네다로 이적했다. 그는 말년에 프랑스의 에투알 루즈 드 파리에서 뛰었는데,[3]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중립국으로 건너가 벨레넨스스와 당시의 벤피카에서 뛰었다. 1942년, 스코페지는 다시 남아메리카로 돌아가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서 말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