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전라남도 지금의 여수시에서 팔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허영만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순사(巡査)였으며, 해방 후 얼마 동안은 경찰로 봉직하였다. 1948년에 여순사건이 일어나면서 경찰의 가족이었던 그의 가족은 죽음의 문턱에 처하기도 하였다.[3] 그 후 허영만의 아버지는 잠시 여수교육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어머니는 여수시장에서 솥, 유리, 스테인리스 그릇 등을 파는 양은그릇 대리점을 운영한 자영업자로 일하면서 팔남매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하지만 아버지가 친구와 동업으로 차린 멸치어장 사업이 실패하는 등의 불운으로 가세가 기울어, 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여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허영만은 여수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4] 서울로 올라가 바로 만화가 박문윤의 문하생을 시작하였고 만화가 이향원의 문하생으로 일하다 1974년 소년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당선되어 만화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50여년간 200편 이상의 작품과 15만 페이지 이상의 작품을 창작하였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목포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5]
만화가 허영만은 한국 만화계의 산 역사로 불리며, 50년 이상 작품 활동에 몰두하며 대중과 소통해 왔다.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서 당선되어 만화계에 입문했으며, 이후 《각시탈》, 《타짜》, 《식객》, 《날아라 슈퍼보드》 등 한국 만화사의 전설로 남을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작품을 통해 단순히 오락적 요소를 넘어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각시탈》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운동가의 투쟁을 그리며 한국인의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했고, 《타짜》는 인간 욕망의 본질을 탐구하는 독창적인 서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식객》을 통해 한국 음식 문화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음식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작품 제작에 있어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현실감을 살려냈다. 《식객》 제작을 위해 한국 전역을 직접 탐방하며 음식을 경험하고 기록했으며, 이를 통해 만화를 예술적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화적, 사회적 도구로 활용했다. 세심한 접근은 독자들에게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선 학습적이고 감동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웹툰 시대에 맞춰 새로운 플랫폼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전통적인 종이 만화와 디지털 만화를 잇는 교량 역할을 수행했다. 최근에는 주식과 같은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주제를 만화에 녹여내며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단순히 작품 활동에 그치지 않고, 후배 양성과 산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문하생인 윤태호 작가(《미생》)를 비롯한 많은 후배 작가들이 그 영향 아래 성장하며 한국 만화의 저변을 확대했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멘토로서도 존경받았다.
작품으로는 《각시탈》,《태양을향해달려라》,《짚신왕자》,《무당거미》,《변칙복서》,《사마귀》,《카멜레온의시》,《10번타자》,《고독한기타맨》,《제7구단》,《오한강》,《허슬러》,《블랙홀》,《초감각전쟁》,《날아라수퍼보드》,《망치》,《아스팔트 사나이》,《미스터Q》,《비트》,《사랑해》,《타짜》,《사랑해》,《식객》,《부자사전》,《꼴》,《동의보감》,《커피한잔할까요》 등 200여 작품을 창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