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42경기에 국제 경기에 출전하여 58골을 실점하였으며, 1956년 AFC 아시안컵과 1960년 AFC 아시안컵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그 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아서 1972년 메르데카컵, 박스컵과 1976년 하계 올림픽 예선, 1978년 아시안 게임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지도자 경력
1982년 할렐루야에서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하였으며[1] 그 후 1983년 한국 프로축구 원년 리그 우승을 하였으며 최초 감독상 수상의 영예도 함께 가져갔다.
1989년 말 유공 코끼리의 2군 감독을 선임되었으며[2] 1992년 기술고문직을 수행했다. 2000년 9월 11일 설악산 등반 중 추락해 사망하였는데 이에 앞서 1991년 6월 29일 경기 종료 후 본인(함흥철)의 소속팀(유공)이 패하여 3연패를 기록하자[3] 당시 주심이었던 이상권 심판을 폭행한 혐의 때문에 같은 달 30일 서울 중부경찰서로부터 불구속 입건됐고 1991년 7월 22일 축구협회로부터[4] 1년 자격정지됐으며 이외에도 1960년 올림픽 예선 당시 심판을 구타한[5] 사건의 주동자였고 1971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경기에서 주심이 조흥은행 감독에게 주의를 주자 옆에서 심판을 때린 전적이 있을 정도로[6]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