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함주'로 불렀지만, 1258년 조휘의 반란으로 철령 이북이 원나라 쌍성총관부 소관이 됨으로써, 함흥은 고려의 영토가 아니라 쌍성총관부에 속해 있었으나 고려 공민왕이 1356년에 원나라가 홍건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을 기회로 해서 영토를 넓혔고, 비로소 함흥이 고려의 영토로 환속하게 되었다.
함흥시는 한국전쟁 때 공공시설과 수많은 주택이 파괴되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는데, 천리마운동 때 2차선도로를 구축하고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새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천리마운동 때 도시개발을 할 때에는 소련과 독일민주공화국의 지원이 있었다. 새 시가지는 대부분 중앙유럽의 공산주의 나라의 도시들처럼 바둑판형의 계획도시로 탈바꿈했다.
1960년에 함흥시가 직할시로 승격하였다. 이와 함께 흥남시와 퇴조군(현 락원군) 등이 함흥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70년에 다시 함경남도가 관할하는 일반시로 변경되어 퇴조군이 다시 분리되었다. 1977년에 반룡구역(盤龍區域)이 동흥산구역으로 개칭하고, 1990년에 성천구역(城川區域)이 성천강구역으로, 룡성구역(龍城區域)이 해안구역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이 도시는 1992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만든 예술영화인 〈도시 처녀 시집와요〉의 촬영지로 유명하며, 주요 관광지로는 마전유원지와 함흥대극장, 경기장, 함흥본궁이 있으며 그중에서 대극장은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져 대극장이라는 이름에 맞게 크고 웅건하게 솟아 있다.
함흥평야에서는 쌀이 많이 생산하며, 그밖에 사과와 보리, 밀, 콩을 재배한다. 목재를 이용하여 만든 가공업은 펄프공장, 노트공장, 종이공장이 발전했다. 함흥시 수산사업소에서는 게와 물고기, 오징어들을 잡고 있다. 주요 화학공장은 소위 주체섬유를 개발했다고 알려진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있다.
교통
함남선, 신흥선, 장진선 등은 목재수송에 이용된다. 그 외에도 도로가 위치해 있다. 관내에 덕산비행장이 있지만 군사용도로 이용되고, 항공 교통은 선덕비행장을 이용한다.